한줄 詩

우리는 환상적으로 헤어졌다 - 김태완

마루안 2022. 5. 17. 21:42

 

 

우리는 환상적으로 헤어졌다 - 김태완

 

 

손을 잡지 않아도 우리는 이어진다

포옹을 하지 않아도 바짝 다가가지 않아도

우리는 어떻게든 이어진다

너와 내가 한없이 달라도

생명이 없어도 만난 적이 없어도

우리는 이어지고 연결된다

 

마음이 닿으면

입구도 출구도 없는 빛 고운 방 안에서

영원히 나올 수 없는 환상을 이야기한다

나오지 않고 꿈틀대며 한자리를 지키는 고목으로

언제든지 그립고 향기로운 눈물이 될 수 있다

 

너와 나는 멀리 있어도 가깝고

가까이 있으면 꿈결 같다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진 모든 것들이

작은 아픔에 마음이 닿은 줄 모르기도 하지만

외면하고 뿌리친 수많은 뒷걸음이야 온전했을까

 

한번 닿은 마음은 달빛 내린 방 안의 구석구석

별들이 가득했던 순간이 사라지는

이별을 만나더라도

 

네가 어느 곳 어느 장소에서

무엇이 되어 까마득히 멀어진다 해도

그리움은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시집/ 다음이 온다/ 이든북

 

 

 

 

 

 

처음이 온다 - 김태완

 

 

간절하다는 것은

슬픔을 넘어 눈물을 이겨내는 가장 아름다운 태도

 

목표가 생겼다는 것은

내가 만든 푸른 창공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낙하를

온전히 감내할 용기를 얻었다는 것

 

자세를 가지런히 다듬고 이름 모를 꽃을

공손히 바라볼 수 있는 예의를 알았다는 것이다

 

힘겨운 계절을 견디는 덕장에 널린 마른 황태의 고요함처럼

눈보라 칼바람을 향하며 조금씩 익어갈 때

숙성된 처음이 온다는 것이다

 

자세를 잡으면 비로소

다시 처음이 온다.

 

 

 

 

# 김태완 시인은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신탄진에서 성장했다. 2000년 계간 <오늘의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추억 속의 겨울은 춥지 않다>, <마른 풀잎의 뚝심>, <왼쪽 사람>, <아무 눈물이나 틀어줘>, <다음이 온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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