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 안의 원숭이를 보라 - 송경동

마루안 2022. 5. 13. 21:24

 

 

내 안의 원숭이를 보라 - 송경동


스물 초입 세상을 배울 때 꿈 하나는

나이 먹어서도 원숭이는 되지 말자였다
잠깐 민주주의자였다가
잠깐 정의의 편 참된 역사의 편이었다가
왕년의 시시껄렁한 무용담이나 늘어놓고
얕은 재주나 파는 이는 되지 말자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을
내 것인 양 사유화하고
헐값에 팔아넘기는 사람은 되지 말자였다

그러나 어느 틈에
내 안에도 들어와 사는 큰 원숭이 한마리를 본다
작은 재주에 으쓱하고 쉬지 않고 재롱을 부리며
광대처럼 무대에서 박수만 받고 싶어 하는 원숭이
사회를 검색하는 일보다 자신을 검색하는 일이 더 많고
숨겨진 진실을 캐는 일보다
눈곱만 한 자산을 계량하는 일이

더 많아진 원숭이

자신이 어떤 좁디좁은 철망 속에
다시 갇혔는지도 모른 채
몸집만 커다래진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창비

 

 

 

 



연루와 주동 - 송경동


그간 많은 사건에 연루되었다
더 연루될 곳을 찾아 바삐 쫓아다녔다

연루되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
주동이 돼보려고 기를 쓰기도 했다

그런 나는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어디엔가 더 깊이깊이 연루되고 싶다
더 옅게 엷게 연루되고 싶다

아름다운 당신 마음 자락에도
한번쯤은 안간힘으로 매달려 연루되어보고 싶고
이젠 선선한 바람이나 해 질 녘 노을에도
가만히 연루되어보고 싶다

거기 어디에 주동이 따로 있고
중심과 주변이 따로 있겠는가

 

 

 

# 송경동 시인은 1967년 전남 벌교 출생으로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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