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람은 너의 소멸로부터 오고 - 박두규

마루안 2022. 5. 1. 19:46

 

 

바람은 너의 소멸로부터 오고 - 박두규

 

 

바람이 분다

모든 걸 쓸고 갈 거대한 해일을 몰고

그렇게 두려움은

언제나 죽음으로부터 오지만

그 죽음의 두려움을 넘을 수 있는 건

스스로를 버려야만 하는 것

 

거대한 바람이 불어

오랜 억압과 폭력을 쓸어낼 수 있는 건

모두를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건

나 하나 먼저

스스로를 버려야만 하는 것

 

그토록 바람은 나의 소멸로부터 오고

바람은 멈추는 순간 바람이 아니니

어디론가 끝내 흐르는 것이며

누군가에 이르러

변화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미얀마의 바람은

미얀마의 죽음으로부터 불기 시작했다

불타는 도시 양곤의 아스팔트에 쏟아낸 그대들의 피가

이젠 지구별 모든 사람들의 피가 되었다

 

어느 날 불어오는 한 가닥 바람처럼 그렇게

그대들의 죽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렇게 바람이 되었다

 

 

*시집/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의 시간 속에서/ 도서출판 b

 

 

 

 

 


두텁나무숲 하루 꿈 3 - 박두규

 

 

강을 건너는 하루 꿈 본다 건너편 사시나무 이파리들이 흔들리며 반짝인다 저편이 흔들리는 만큼 이편도 흔들렸다 세상은 흔들리면서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시절의 꿈은 이토록 선명한데 나의 꿈은 아직도 스스로를 통속(通俗)하지 못한 채 선악의 한 금을 그었다 위선(僞善)의 끝은 어디인가 배롱꽃 피고 지는 붉은 날들이 가는데 그대 이승의 꿈 하나는 강을 잘 건너고 계시는가

 

 

 

 

*시인의 말

 

위기의 절정에서 피어나는 이 인류세(人類世)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내가 보이지 않는 너를 사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