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희망자원 앞에서 - 박숙경

마루안 2022. 5. 1. 19:38

 

 

희망자원 앞에서 - 박숙경


사라진 별을 생각하느라 잠을 놓쳤다면
하현달은 불면의 공범

흘러내리는 하품을 손수레에 앉혀 막다른 골목 기웃거리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 한 줌의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까?

 

쓸모없어 버려진 것들과 쓸모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들과 펴진 것은 주름잡고 주름진 것은 곧잘 폈을 낡은 이야기와 한때는 최신형으로 잘나갔을 과거의 슬픈 노래와 부서지고 닳은 것들의 최후진술들이 닫힌 철문 앞에 모였다

 

경멸과 연민과 곱지 않은 시선을 따돌리고 반복적으로 굽신거린 허리가 발굴한 고물과 처음부터 고물로 태어난 고물과 알면 돈이 되는 고물과 기타 등등의 잡동사니들과 불법과 합법 사이의 아슬아슬한 편견들

 

빠진 발톱처럼 다시 태어나는 것이 희망이라고 했나요?
거친 손바닥에 쥐어진 몇 닢의 지전을 꿀꺽 삼키면 울렁거리는 저 달빛에 닿을 수 있나요?

 

당신의 희망은 지금도 유효한가요?

 

 

*시집/ 그 세계의 말은 다정하기도 해서/ 문학의전당

 

 

 

 

 

 

결국엔 요지경 - 박숙경


처서도 지났는데
쓰잘떼기 없는 비는 자꾸만 찔끔거리고
대리 양반은 혼자 중얼거리는데
마누라는 문자 안 본다고 뭐라 할 게 뻔하고
그 양반은 자꾸 쉰내 나는 말만 꺼내고
나는 건성건성 마른 대답을 내놓는다

어떤놈은술친구해달라하기도한다는데

어떤년은해뜨는거보러가자하기도한다는데
어쩌라고

결심에 결심을 더해도 세상은 요지경인기라

변명을 하자면 아무리 취중이라도 그렇지

첨 보는 사람한테 그딴 소리 하는 사람은

우울증 환자거나 조울증 환자거나 그딴 답이 올 게 뻔하고
허우대 하나는 멀쩡해도

영혼 없이 사는 사람들 그 속에 나도 끼여 있으니

눈도코도입도닫고살아야제

그냥 가자는 길 똑바로 가면 될 텐데

지 할 말 다하느라 가는 길 놓치고

결국엔 마누라한테 한소리 듣게 만들고
결국엔 빗소리 커지고

결국엔 밤도 깊어졌는데
잠은 올 때 자야지

아차 하다간 꼴딱 밤을 새우지

암만 생각해도 세상은 요지경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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