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을, 겨울, 봄을 지나 여름으로 - 박찬호

마루안 2022. 4. 30. 21:36

 

 

가을, 겨울, 봄을 지나 여름으로 - 박찬호

 

 

행복한가

가을바람이 서늘한 물음을 보냈다

알고 묻는 것일까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어 잠시 멍하니 있는 내게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는가 묻는다

 

혹시나 그리운가

창밖 흰 눈은 저리도 예쁜데

진즉 돌아왔어야 할 그이는 보이지 않고

되돌아보니 지난했던 그 한때를 두리번거리며 배회하는 나를

싸한 겨울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문득문득 몰려와

시린 내 귓볼을 때리며 묻는다

 

그래서 외로운가

때 이른 봄 벚꽃이 바람에 떨어지다

내 발아래 멈춰서 진지하게 묻는다

나는 단지 네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뿐인데

내가 그리도 절박해 보였냐고 내게 네게 되묻는다

 

정말로 두려운가

여름 진한 햇볕 아래 잠시 묻어 두었던 외로움이

들릴 듯 말 듯 속삭인다

외로움은 종종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돌아보면 다시 눈가 촉촉한 행복이 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잘 모르겠다면

그것은

명확히 두려움이라고

 

 

*시집/ 꼭 온다고 했던 그날/ 천년의시작

 

 

 

 

 

 

반기지 않는, 반갑지 않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 박찬호


따가운 가을 햇살이 든 바람
올림픽 도로변 누구도 축복하지 않는 삶
이름이 없다고 하기도 하고 이름을 모른다고 하기도 하고
통칭으로 기타의 생명들로 불리어도 괜찮은 것들

죽음이 두렵지도 않고 부활이
시골 아낙 아이 낳기보다 수월한
여건과 조건이 필요치 않은 삶의 강인함
살기 위해 주위의 나약함 따위는 고려의 여지가 없는
그래서 생의 경외 따위는 잊힌 지 오래인

누구는 타고난 천성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생명에의 집착이 만들어 온
진화의 과정이라고도 하고
그렇게 그들만의 리그는 시작되어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그들만의 리그로 무한 반복한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밟으면 밟을수록
죽이면 죽일수록
굴종과 회한의 역사는 없다
살아남는 것만이 최고의 선

쓰러져 있다고 다친 것은 아니며
꺾여 있다고 목전에 죽음을 둔 것도 아니고
잘려 없어졌다고 해서 영원히 죽는 것은 더더욱 아닌
생각해 보면 눈물 나는 신비로움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의 작은 역사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삶의 순환
가치 없는 생의 궤적
한강의 바람은 언제나 좌에서 우로
풀잎 혹은 잡초들은
바람을 따라 천천히 눕는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망자원 앞에서 - 박숙경  (0) 2022.05.01
닻 - 우대식  (0) 2022.04.30
봄밤 - 김정미  (0) 2022.04.29
일생 한 일 - 장시우  (0) 2022.04.29
발바닥의 생 - 이현조  (0) 2022.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