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닻 - 우대식

마루안 2022. 4. 30. 21:43

 

 

닻 - 우대식

 

 

참 많은 문신을 보았지만

문신이란

오직 닻 하나

하급선원으로 떠돌았을 사내의 팔뚝에 겨우 매달린

그것,

끝내 정주할 수 없다는 예감으로 문신은 희미해진다

불 꺼진 항구에 수없이 닻을 내렸을 테지만

닳아빠진 그것을 슬그머니 건져 올리는 새벽

남쪽의 별들은 사내의 등을 내려다본다

닻 위에 별을 하나 그려놓아도 좋겠지만

그것은 지고지순이 아니다

저 지고지순은 언제쯤 희미해지는가

다 닳은 지고지순을 안고 한평생을 살아야 하는가

항구에 배를 댈 때

별의 슬픔과 닻의 슬픔이

슬픔을 참아가며

희미하게 미소 짓는,

지고이네르 지고지순

지고이네르의 지고지순

 

 

*시집/ 베두인의 물방울/ 여우난골

 

 

 

 

 

 

봄날은 간다 - 우대식

 

 

허무의 절창

봄날은 간다

그렇게 사라져야지

꽃잎이 물에 떠서 사라지듯

알뜰한 당신이나 생각하며 삼월의 날들을 살아야지

온통 사랑이라 말하지만

온통 죽음인 한 철을 살아야지

봄날 풀린 물가에서

물오른 강아지풀이나 꺾어 입에 물고

육신이 되고 마음도 되는 가슴이라는 말이나 생각해야지

그러다 낯설고 또 낯설어하며 부끄러워해야지

바람이 불어 그 부끄러움도 다하면

봄날, 살아야지

먼 동방의 나라에서 다시 눈이 쏟아져 내릴 때까지

사랑이라는 그 질긴 인육에 머리를 처박고

당신의 피와 살을 핥아야지

지루하고 먼 나라,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