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구름의 사주 - 윤향기

마루안 2022. 4. 27. 21:55

 

 

구름의 사주 - 윤향기

 

 

빈 들녘에 연기가 자욱하다. 짚 타는 연기가 매캐한 외로움이 되어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자 한다. 까마득한 하늘로 우르르 몰려가 새털구름을 훔쳐보거나 여우비에게 접근했다가 따귀를 맞고 홀로 지상으로 추락할 때도, 존재의 심연에 곤두박질하여 통곡의 볼륨을 올릴 때도 다 지났다. 저녁노을에 머리를 물들이면서부터는 구름의 눈물 닦아 주는 역할을 도맡고 레퀴엠(진혼곡) 듣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구름의 손바닥을 펴 본다. 구름 모자를 쓴 물고기 한 마리 천상의 춤을 멈추고 이제는 결가부좌다. 옴!

 

 

*시집/ 순록 썰매를 탄 북극 여행자/ 천년의시작

 

 

 

 

 

 

벼락을 맞다 - 윤향기

 

 

TV가 말했다. 꽃을 오래 보려면 물속에 설탕을 조금 넣으라고

 

어버이날 꽃바구니가 배달되었다. 나는 배운 대로 유리 화병에 물을 가득 받고 설탕을 듬뿍 넣어 식탁에 놓았다. 일주일 내내 싱싱하게 웃는다. 다시 물을 갈고 설탕을 듬뿍 먹여 주었다. 이 주일이 지나도 그대로다. 싱싱한 웃음을 마시며 유리벽속의 꽃대를 바라본다. 본래의 초록 라인이 사라진 자리, 설탕물에 퉁퉁 불어 영혼 불멸을 꿈꾸는 저 앙증맞은 꽃들이 섬뜩하다.

 

의사가 말했다. 꽃을 오래 보려면 몸속에 설탕을 조금 넣으라고

 

​아침마다 몸속에 호르몬 약을 투여한다. 시들지 않으려고 여자를 지니려고. 썩은 꽃대에 간신히 매달려 처절하게 웃는다. 나는 조화가 될 거야. 갈 때를 잃어버린 꽃은 꽃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사라지기에 아름답지 않은가. 과대 영양 덕분에 시들지도 못하는 말간 눈동자가 너무나 안쓰럽다. 두 눈 질끈 감고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약통, 낙뢰 맞은 저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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