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귀신도 살고 사람도 살고 - 이현승

마루안 2022. 4. 25. 19:28

 

 

귀신도 살고 사람도 살고 - 이현승

 

 

스승이 없었다면 오늘날 네가 있었겠느냐

하지만 제자가 없다면 스승이 있겠습니까.

가르치는 일이 배우는 일이기도 하고

교학상장이란 말도 있지만

 

배우겠다는 사람은 없는데 가르치려는 사람은 왜 이리 많은가.

본래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지만

처세에 능한 사람들이 예의는 미처 챙기지 못하는 것은

궁금한 건 많은데 알려주는 사람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공부는 지식만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서

학교가 반드시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라서

커피숍도 있고, 화장품 가게도 있는 학교에는

학교가 없고, 제자가 없고, 스승이 없고, 가끔 친구는 있는데

 

교장선생님 말씀과 주례사의 미덕은 올바름에 있지 않고

그건 눈높이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길이의 문제이다.

짧아야 좋은 것들은 얼마든지 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견딜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고

그 말을 한 사람은 본부 중대장님이셨는데

 

아, 스승님은 달을 가르키는데 손가락은 왜 보느냐고 하시지만

처음부터 관심은 손가락에도 있었다. 당신은 손이 예뻐요.

따지고 보면 제사도 지내고 젯밥도 먹는 것이 사람의 일이지요.

귀신도 살리고 사람도 살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시집/ 대답이고 부탁인 말/ 문학동네

 

 

 

 

 

 

질문자 유의사항 2 - 이현승


정작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는데
세상에는 지혜를 팔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뿐이고
가령, 오만과 독선은 그중에서도 가장 손쉬운 지혜일 텐데
한 번 쓰고 버리기엔 너무 비싼 일회용품처럼
값비싼 편의는 차라리 불편하다.

우리는 목마른 질문을 가지고 있고
해답을 가르쳐줄 누군가가 필요하지만
그건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고
불편한 얼굴은 검붉은 얼굴인데
갈색을 붉은 검정이라고 하든 빨강이라고 하든
여전히 그건 당신의 자유이지만

같은 재료와 레시피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 실습자처럼
잘 안 되는 사람은 이유를 잘 알 수 없고
그래서 물어보면 잘되는 사람의 편에서는
잘 안 되는 사람이 이해가 안 간다.

이해는 안 되어도 되는데 맛이 없고
편집증이란 늘 그렇듯이 사실에 봉사하지 않는다.
기분과 느낌에 봉사한다.
뻔한 대답은 이해도 잘 안 되는데 맛도 없는 레시피 같다.
여전히 이유는 잘 모르지만 맛은 확실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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