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마음이 콩 같아서 - 박수서

마루안 2022. 4. 16. 22:07

 

 

마음이 콩 같아서 - 박수서


그런 거 있잖아
책상 위에 놓여있던 화분이 말라 죽어 치워버리면
유독 그 빈자리가 신경 쓰여 무엇이라도 채워 놓고 싶은 마음
어느 날은 외려 비우려 애써도 책상 유리에 붙인 오래된 중국집 광고 라벨처럼
긁어내려 아무리 밀어도 말끔하게 비울 수 없는 젖은 눈곱처럼 끈적해진 마음
그런 마음, 밤새 알을 낳는 흰 눈에게 들킬까 봐 자다 깨다
괜한 알전구만 켰다 껐다, 전선을 팽팽히 잡아당기는 심장 쪽 전류
를 꽁꽁 얼려 망가트리려 냉골을 찾아 웅크리고 울어도 콩콩 뛰는 마음
마음이 마음의 어깨를 툭 치고, 마음이 마음의 마음을 금가게 하고
마음이 마음에게 미안해하고, 마음이 마음을 마음 아프게 하고
그런 마음, 방갈로 짓고 식어버린 도시락이라도 까먹고 싶은 날
멀리 떠나 당도하지 않은 그리움이 먹다 흘린 밥풀을 떼어 주고 싶네
마음 뒤편 들키지 않고 깊게 숨으러, 잠수함처럼 가라앉는 노래기 떼
이제 안전한 항로를 찾아 따라가야 하나
가능하면 물 밖으로 나오지 말아야겠지
어뢰에 한 방 맞은 수상한 함정처럼 구멍 나지 말아야지
마음 없는 마음의 기둥을 속없이 흔들지 말아야지
마음 모를 마음을 훌쩍훌쩍 볶아 내야지

 

 

*시집/ 내 심장에 선인장꽃이 피어서/ 문학과사람



 

 

 

내 심장에 선인장 꽃이 피어서 - 박수서


하루 종일 따끔거렸어
손에 무엇을 들어도 살을 파내는 피가 흘렀어
연필을 쥐면 뜨거운 시가 아프다고 국밥처럼 끓었고
혈관을 헤매다 꽂혀버린 창 촉이 그리운 독을 품을 때,
쉬어버린 밥처럼 갈 곳 몰라 솥을 잃고 있었어
이미 주워 먹어 버린 밥알은 완두콩처럼 퍼렇게 질려 목에 박혔어
뱉어낼 수 없는 게 사랑이라면, 그 마음에도 길을 내야 한다면
나는 미끄덩한 길을 만들어 함부로 건널 수 없게 할 거야
뻔히 보이는 철새를 불러 주름지처럼 접어 꽃을 만들 거야
푹 빠져버린 남쪽에서 능선을 타고 기어올라 북쪽으로 갈 거야
거기서 새를 날려 보내야 해

내 심장에 꽃이 피어서
아메리카에서 성장한 대륙처럼, 잎 없이 단단한 선인장 꽃이 피어서
마음이 헛헛하여 물이라도 벌컥벌컥 들이켜다 말라 죽어버릴 것 같아서

 

 

 

 

*시인의 말

 

그리움에 끙끙대본 사람은 알 거야

그리움에게 앓는 소리를 내면,

그리움이 금가고 깨져버린다는 거

 

그리움을 그립지 않게 하려면,

그리움은 그냥 그립게 내버려 둬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