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의 손금을 읽는 오후 - 송병호
좁은 고샅길
돌아도 돌아도 제자리인 그 골목엔
숙명처럼 상처 안고 똬리 튼 골목길이 있다
명랑이발관의 해맑은 미소를 지나쳐
엇갈린 오복 담뱃가게 생명선은 차마
풍년 쌀가게 재물선과 영영 만날 수 없는
구획이 되었다
그나마
입시학원의 장래선은 또렷한 선이다
실선들, 흔들릴 때마다 칙칙한 배경의
가끔 끊어졌던 동시상영,
두 편의 영화는 오간데 없고
낡은 영사기 한 대
짓무른 앵글로 바람을 채록하고 있다
한때는 민심을 쥐락펴락했을
선과 선의 공존,
바닥이 다른 면 위의 또 다른 점선들
깨진 유리창 너머 하루를 점치지 못하는
도시의 손금으로 남아 있다
수상학은 믿을 게 못 된다고
툴툴거리며
다 닳아빠진 지문을 가지런히 포개
혼자 졸고 있는 노파
*시집/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상상인
셀로판지처럼 바삭거리는 사월의 별 - 송병호
커튼을 젖히자 빛의 전시장이 선다
첫 음조차 떼지 못한 시화 없는 미술관
사월의 전단은 슳다
아픔이라는 것은 생각의 결핍보다
기억의 과잉에서 역설되는 것
잃어버린 것이 시름의 그늘로 여겨지듯
때때로 드러내지 않는 조문객과 같아
자기 표정을 감춘 꽃이거나 바람이거나
웅숭깊지 못한 허기진 꽃잎
바다는 목울대가 쉬어 울지 못했다
모래 한 알 뱉어내지 못한 진주조개
속살 후비는 아픔 정도야 다시 돌아올 기약인데
너무 먼 곳에서 도착한 부고
휴대폰에 저장된 허밍과 비음의 문장
사월의 별은 언제쯤 익숙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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