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지구 6번째 신 대멸종 - 최백규

마루안 2022. 4. 16. 21:58

 

 

지구 6번째 신 대멸종 - 최백규


봄이 와도 죽음은 유행이었다

꽃이 추락하는 날마다 새들은 치솟는다는 소문이 떠돌고
창밖엔 하얀 유령들만 날렸다

네평 남짓한 공간은 개의 시차를 앓고
핏줄도 쓰다듬지 못한 채 눈을 감으면 손목은 파도의 주파수가 된다 그럴 때마다 불타는 별들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 심장 끝에서 은하가 자전한다는 사실을 안다 늙은 항성보다 천천히 무너져가는 지구라면 사각의 무덤 속에는 더러운 시가 있을까

흙에서 비가 차오르면 일초마다 꽃이 지는 순간 육십초는 다음 해 꽃나무

 

퍼지는 담배 향을 골목에 앉아 있는 무거운 돌이라 생각해보자

얼어붙은 명왕성을 암흑에 번지는 먼 블랙홀이라 해보자

천국은 두번 다시 공전하지 못할 숨이라 하자

 

이것을 혁명이자 당신들의 멸망이라 적어놓겠다 몇백억 년을 돌아서 우주가 녹아내릴 때 최초의 중력으로 짖을 수 있도록, 모두의 종교와 역사를 대표하도록

 

두 발이 서야 할 대지가 떠오르면 세계 너머의 하늘이 가라앉고 나는 그 영원에서 기다릴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

 

*시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창비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 최백규


나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일 것이다

꽃가지 꺾어 창백한 입술에 수분하면 교실을 뒤덮는 꽃
꺼지라며 뺨 때리고 미안하다며 멀리 계절을 던질 때
외로운 날씨 위로 떨어져 지금껏 펑펑 우는 나무들
천천히 지구가 돌고 오늘은 이곳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단 한번 사랑한 적 있지만 다시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너의 종교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몇평의 바닷가와 마지막 축제를 되감을 때마다
나는 모든 것에게 거리를 느끼기 시작한다

누군가 학교에 불이 났다고 외칠 땐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있었다
운명이 정말 예뻐서 서로의 벚꽃을 떨어뜨린다

 

저물어가는 여름밤이자 안녕이었다, 울지 않을 것이다

 

 

 

 

*시인의 말

 

빛은 그늘에서도 죽지 않고 자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