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길한 광선과 기이한 날갯짓 - 우혁

마루안 2022. 4. 9. 22:22

 

 

불길한 광선과 기이한 날갯짓 - 우혁

 

 

손톱 밑이 더럽다고 느꼈을 땐

계절 하나가 사라지고 있었다

건너가기에는 너무 먼 걸음이

검은 물 가득 고인 채 흐려졌다

 

나는 괴물이 필요해

너의 거친 숨소리처럼

술자리 끝의 악다구니처럼

밋밋하지만 살짝 쓰리고

한없이 가볍기만 한 악력(握力)

 

너는 자세보다 먼지를 사랑해서

끝이 아닌 것들의 이름을 꼽느라

하루가 갔어

빛나던 것들이면 모두 이름이 있었지

 

그해에는 마모가 심했다

노인들이 기침은 모래 가루처럼

바닥에 떨어졌고

새들은 그것들을 쪼아대며

길 위에 몸을 긁어댔다

 

어둠은 증명되는 거야

어둠이 어둠임이 증명되어야 비로소 그림자인 거지

너는 새의 발자국을 따라갔고

자주 넘어졌다

그게 그해의 마지막 날갯짓이었다

 

 

*시집/ 오늘은 밤이 온다/ 삶창

 

 

 

 

 

 

저녁의 일부 - 우혁

 

 

대부분의 죽음은 발을 내어놓는다

죽어가는 자들은 서로의 손을

손으로 핥아보며

휘파람을 연습했다

우시장이 가까운 곳에서 드디어 목동들은

자신들이 발명한 언어로 공평하게 저녁을 나눴다

그것은 딱 1음절로 끝나는 노래였으나

방향을 달리해서 보면 두꺼운 음계들로

계곡을 짓고 있었다

 눈을 잃으면

 발을 굴러야지

 손을 잃으면

 드디어 입술을 움직일 시간

얼핏 알아챈 가사의 일부

누군가는 거기서

밤 뜸 드는 냄새를 맡았다고

고백을 했다

화장(火葬) 불이 붙은 채로

따라붙는 발자국,

눈치챈 객들은

다 타기 전에 그림자를

염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아주, 아주 조금만 얼굴이 보여도

서로의 입을 막아주곤 했다

산길을 넘고 돌아도

불타는 발자국이 보인다고 수군대다

곡소리를 새소리로 착각하기도 했다

저녁만이 공평했다

알고 보면 얼굴에 묻은

허기를 터는 일

평생 짓던 표정은

하나가 된다

모두 짙은 입맛을 다시는

저녁이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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