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팔굽혀펴기 - 박숙경

마루안 2022. 4. 9. 22:16

 

 

팔굽혀펴기 - 박숙경


지루한 생각이 자라나면
미완의 팔굽혀펴기를 꺼내야지
눈물이 고여 넘치기 전에

비밀이 될 수 있는 것과
비밀이 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뻔한 것과 뻔하지 못한 것의 차이

만월을 삼켜버린 꿈
아름다운 슬픔일까
꿈 깨기 전의 깊은 흐느낌 같은 걸까

얼마의 기억들이 줄을 서서 못을 박고
입장을 바꿔보지 못한 생각들이 집을 짓는 시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으로
초라해진 생각의 어깨를 두드리며
문턱을 넘나드는 여러 말을 생각했다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는
살아야 하는 것이 순서이므로
이별이라는 말을 포기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완성될 팔굽혀펴기를 위하여

 

 

*시집/ 그 세계의 말은 다정하기도 해서/ 문학의전당

 

 

 

 

 

 

추풍령 - 박숙경


솔직히 말하자면
트로트보단 발라드였다

처음엔 지명에 이끌렸고
가을비 촉촉한 아침
까치소리에 묻어 올라온 쓸쓸함이 그 다음의 이유라면 이해가 될까

구름이 자고 가면 얼마?
바람이 쉬어 가면 얼마?

 

굽이마다 얼마큼의 한이 서려 있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쇠죽 끓이다가 라디오에서 섬마을 선생님이나 찔레꽃이 흘러나오면 나도 모르게 부지깽이 장단을 맞추게 하던 트로트보다는 발라드가 좋았다

어쩌다가,
목이 메어 우는 기차의 사연이 궁금했고
다시 말하자면

싸늘한 철길을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구비구비 돌아가는 무궁화호의 사무친 아쉬움은 어떤 것이며 눈가에 어린 눈물이 두 뺨에 흘러내려 흐려지는 뒷모습이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만, 

가수 이름과 얼굴은 가물거려도 중저음의 그 목소리가 기적(汽笛)처럼 아련해지는 오후였다

 

 

 

# 박숙경 시인은 경북 군위 출생으로 2015년 <동리목월>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날아라 캥거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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