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늙은 혁명가의 농담 - 정덕재

마루안 2022. 4. 7. 21:47

 

 

늙은 혁명가의 농담 - 정덕재

 

 

2021년에 혁명가로 살기 위해서는

전동드릴 쯤은 자유자재로 다뤄야 한다

수많은 볼트와 나사로 고정된 것을 풀기 위해

혁명가는 숙련된 기술자여야 한다

이념과 열정으로 무장하기에 앞서

최신 장비로 무장해야 한다

 

콘크리트 벽에 못을 박다가

드릴의 무게 감당하지 못해

손목이 꺾였고

정형외과를 다닌 지 2주째

장기적인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다녀야 할지

거리의 간판을 살피는

나이 든 혁명가는

아무도 모르게 목공방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도 혁명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전동드릴을 자유롭게 다룰 때쯤

해답을 말한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손목과 발목과

이음새의 안부를 먼저 챙기는 게

혁명의 길에 나서는 첫 번째 태도다

 

 

*시집/ 치약을 마중 나온 칫솔/ 걷는사람

 

 

 

 

 

 

여론조사 2 - 정덕재

-벚꽃과 살구꽃

 

 

비슷한 시기에 피어

벚꽃을 벚꽃이라 부르고

살구꽃도 벚꽃이라 부른다

 

비슷한 시기에 피어

벚꽃 아래 사진 찍는 사람 많고

살구꽃 가리키며 벚꽃 아래

사진 찍는 사람 많다

 

남한에 벚꽃 거리가 많아

벚꽃 축제가 곳곳에서 열리고

벚꽃과 살구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의 벚꽃 아래 모여든다

 

벚꽃과 살구꽃 중에서

누가 마음이 넓은지 조사하는 아르바이트 청년이

벚나무 아래에 서 있다

 

잎새를 대어 보지 않아도

꽃잎을 살피지 않아도

평생을 벚꽃으로 살아온

도시의 살구꽃이 대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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