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비 박쥐 - 김남권

마루안 2022. 4. 5. 21:21

 

 

나비 박쥐 - 김남권

 

 

나는 나쁜 피를 빨아 먹는 박쥐다

어둠을 밥보다 좋아하고 어둠 속 불빛의

길에서 하이에나처럼

바람의 통로를 따라 움직인다

 

머물 곳이 없어 평생을 거꾸로 매달려

잠자리에 들고 거꾸로 매달려 눈을 씻었다

동굴보다 깊은 어둠 속에서 오직

허공을 날아오는 하나의 주파수만 찾았다

 

시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가슴속의 파동을 기억하는

그 사람의 등 뒤에 숨어서 숨소리만 들었다

 

솜털이 일어서는 오감을 열어놓고도

한 번도 그립다는 말을 못했다

반백 년을 넘게 비워논 하늘 아래서

한겨울에도 지지 않는 하얀 민들레꽃

한 송이로 피어나 서러운 눈물조차

삼켜야 했다

 

눈보라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동면에 들기 전,

심장이 잠시 멈추는 법을 배우고 옛사랑의 그림자를 베어

 

하얗게 솟구치는 그 피를 마시고

어둠 속을 깊게 날아서 흰 날개로 진화한

나쁜 피로 씻김을 받아, 최초로

뒤집어진 채

잠자리에 드는, 나비가 될 것이다

 

 

*시집/ 나비가 남긴 밥을 먹다/ 시와에세이

 

 

 

 

 

 

파란 흉터 - 김남권

 

 

버들가지에 연노랑 물이 들기 시작하는 삼월이 오면

행여 그 사람이 올까

방문을 걸어 잠그지 못한다

바람결에라도 들렀다가 잠긴 손잡이가 서러워

돌아설까 봐 밤이 깊도록 문을 닫지 못한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평생 밖으로 돌던 나를 위해

저녁마다 마을 어귀를 서성이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오지 않는 그 사람을 보려고 밤새 문고리에는

서러운 눈동자만 가득 고였다

그 사람은

도시의 어느 후미진 곳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기다릴 미련도 없는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갇혀 있을까

아무도 살지 않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별처럼

밤아 되어도 아무도 바라보지 않아서

차마 눈을 뜨지 못하는,

잔바람에라도 누군가의 체온이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빗줄기를 타고서라도 꽃잎의 온기가 스며들었으면 좋으련만,

문을 열지도 닫지도 못한 채

삼월이 가고 사월이 가고 오월이 가고

내 왼쪽 가슴 언저리에 저녁 강물 같은

흉터 하나만 돋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