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후회의 목록 - 김화연

마루안 2022. 4. 5. 21:28

 

 

후회의 목록 - 김화연


내가 작성한 후회의 목록엔
왠 노인들이 이렇게나 많을까
발 빠른 나이를 먹는 노인들과는 달리
나는 늘 뒤늦은 나이가 드는 걸까
봄볕에 머리 감겨 드리지 않는 일
정든 가구를 버리라 했던 일 
뾰족한 말의 끝을 살피지 않았던 일
늙은 집과 점점 멀어졌던 일

세상엔 묵음의 날짜로 지나가는 달력도 있어
후회는 무수한 동그라미로 표시되고
어쩌다 다정했던 기념일들이
드문드문 휴일 같을 때
나보다 더 멀리 간
노인을 따라가지 않고
자꾸 기다리라고 한 말
어느새 끝 쪽에 앉아있는 노인을 향해 
왜 그런 위험한 곳에 앉아 있냐고
또 역정을 냈던 말

당신이 나의 후회 목록이라는 사실을
빨리 알아차리길 바랄 뿐
하나하나 후회를 살피다보면
그 많던 후회를 모아 두었던 노인들은
후회마저도 주섬주섬 싸가지고 갔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다

 

 

*시집/ 단추들의 체온/ 천년의시작

 

 

 

 

 

 

육십이란 - 김화연


십 년에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데

육시랄
여섯 번이나

흐릿한 날이면 더욱더
흐릿한 자화상

즐거운 일들 앞에서
찬밥 신세가 관절들의 고해성사

콩의 무늬는 어쩜 저렇게 예쁠까
생선은 요렇게 싱싱하고 맛있을까
시들고 찢긴 경의(敬意)들 

응달 토끼가 양달을 믿듯
양달 토끼가 응달을 걱정하듯
육십이란 나이는 하양도 아니고
검정도 아닌 무채색의 나이
숫자와 활자를 시시때때  까먹는
깜박 새

과거도 미래에도
궁금증이 없는 나이

새순 돋는 봄은 아득히 멀고
뚝뚝 제 몸의 삭정이 꺾는 소리를
저가 듣는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