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뿔은 초식동물의 것이라는 생각 - 이현승
집도의가, 환자분 얼마나 아프세요?
일부터 십 중에 몇인지 말해보세요, 물을 때
이 악물고 뒹구는 사람의 고통이 십, 십, 아니 백이라도
결국 십을 찍으면 구나 팔로 향하게 마련이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생각할 때에는
뽑혀나간 뿔을 더듬는 심정으로
도대체 산 채로 제 뿔을 빼앗긴 심정은 어떨 것인가.
종종 우리가 마취제를 맞고서 훌쩍 다녀온 저 십의 세계란
한도를 초과하여 계측 불가능한 슬픔 같은 것은 아닌가.
그때는 딱 죽을 것만 같았지만
제법 살 만해졌다고 생각될 때,
그때 문득 다시 아프다.
아픈 건 늘상 처음 같은데
견딜 만하다는 건 처음만큼은 아니라는 거.
남보다 더 아파본 사람이 충고라도 한다.
꼭 십까지 가봐야 구나 팔에게 충고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는 거의 쓸 일도 없으면서 이마에 달고 있는 뿔처럼
충고란 어차피 아픈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물건은 아닐지 모른다.
그래도 얼마나 아프냐고 물어주는 것의 효용은 있다.
우리는 어쨌든 일 초라도 그 불구덩이 밖으로 나가고 싶다.
*시집/ 대답이고 부탁인 말/ 문학동네
까다로운 주체 2 - 이현승
누군가의 솔직함이 다른 수준에서는 잔인함이 되듯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고약한 냄새처럼
사실 그 자체보다 더 끔찍한 충고는 없다.
그러나 즉시대출, 파산땡처리, 창고대방출,
악착같이 달라붙어 나부끼는 전단지들처럼
너무 적극적인 구애는 대꾸할 말을 잃게 한다.
살 사람은 알량한데, 팔겠다는 사람들만 넘쳐난다.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그러니까 살아야 하고,
그러므로 살아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니까
무능력과 파산조차 상술이 될 수 있는 거지만
주지 않은 상처를 애써 떠안은 사람처럼
팔려는 사람은 자꾸만 이편의 무관심을 불만으로 번역한다.
무능력의 문제라면
우리는 싫다기보다는 쉬고 싶은데
하필 퇴로의 전사처럼 귀가하며 본
길에 떨어진 팬티는 당혹스럽다.
팬티를 안 입은 것처럼.
# 이현승 시인은 1973년 전남 광양 출생으로 원광대 국문과,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이스크림과 늑대>, <친애하는 사물들>. <생활이라는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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