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 이현조
무서울 것도 안 될 것도 없는 서른을 지나
만만한 것도 되는 것도 없는 마흔을 지나
도망치듯 돌아와 슬하에 들던 날
중년의 아비는 두려움 가득했고
노년의 아비는 암 덩이 가득했다
다 잃은 아비와 다 버린 아비는
마주 보는 거울만 같아서
사랑은 입에 담지 않는 것이 상례라
독설만 퍼부어댈 때
노년의 아비 담 그늘 향해 혼자서 되뇐 말
유언이 되고 말았다
난 그래도 넷 중에
니가 젤 잘될 줄 알았다
*시집/ 늦은 꽃/ 삶창
언덕 - 이현조
아버지 초상에 형은
파묘를 들먹였다
벌초 한 번 해본 적 없는
형은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므로
산소 따위 무의미했다
눈물도 조의도 없는 초상
각자, 접대에 바빴다
할아버지 산소도 파할 것이므로
드넓은 바다에 아버지를 모셨다
할아버지 산소는 터가 좋다더라
무당의 말을 입에 달고 사시던
어머니를 치매 요양원에 모셔놓고
할아버지는 파묘되었다
모든 가계를 한 줌으로 요약하고
각자 돌아가는 형제들
육지를 등진 조각배 같았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흘째 가는 비가 와서 - 심재휘 (0) | 2022.03.08 |
---|---|
백장암에서 - 박남원 (0) | 2022.03.08 |
실수 같은 봄이 찾아와 - 김애리샤 (0) | 2022.03.07 |
신을 창조해놓고도 - 김수우 (0) | 2022.03.05 |
어떤 순간 - 최규환 (0) | 2022.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