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면의 쾌락 - 우대식

마루안 2022. 3. 2. 23:21

 

 

불면의 쾌락 - 우대식

 

 

불면은 내가 나를 베고 잠든 시간

불면은 잠든 나를 쳐다보는 나

잠,

늪으로 한없이 걸어야 하는 수행

무언가 나를

절간의 목어처럼 두드리고 있다

잠과 비(非) 잠 사이를 오가는 리듬 소리

소속 불허,

구걸로 점철된 몽환의 떠돌이로 하얀 바다에 이른다

더러 외할머니 같은 반가운 사람을 만나

화투를 치며 낄낄대다 지낼 만하시냐고 묻다가 화면이 꺼지면

할머니하고 소리를 치다가

또다시 어두운 길을 걷는다

밤이여 어둠이여 짝사랑이여

문득 나는 꺼지지 않는 불의 신도였나 생각한다

사막의 제단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불의 잔을 모래밭으로 집어던진다

모래 유전(油田)으로 불은 번져가고

신(神)도 잃고 잠도 잃고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차라리 죄인으로 벌을 받아야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고향의 수양버들 같은 것이나 생각할 즈음

죽음 같은 잠이 손을 내민다

사랑스러운 죽음이여,

 

 

*시집/ 베두인의 물방울/ 여우난골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 - 우대식

 

 

나는 실비집이 좋다. 저래서 남을까 싶은 생각을 하다가도 실비집 참 좋다.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내장 무침부터 생선탕까지 아낌없이 때려먹다가 생각한다. 나의 날개는 어디로 갔는가? 이 집은 잃어버린 날개를 추억하는 곳인가? 비가 주르륵 창문에 흘러내린다. 한참을 바라본다. 내 꿈은 페르시아의 궁전으로 가는 것이다. 음악과 신과 여자, 날개를 잃어버린 나는 어느 마을 처마에서 비를 긋나. 실비집에서 영화의 엔딩 자막 같은 실루엣으로 서성거리다가 실낙원의 한 마을에 한쪽 날개가 있다는 소식을 가끔 인편에 듣곤 한다. 실비집에서 낙타 두 마리를 세(貰) 내어 날개를 찾아 거리를 나선다. 아직 미명이다.

 

 

 

 

# 우대식 시인은 1965년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1999년 <현대시학> 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 <베두인의 물방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