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벤치의 혼자 - 박인식

마루안 2022. 2. 27. 19:36

 

 

벤치의 혼자 - 박인식

 

 

벤치에 혼자 앉아 있다

기다리는 그 무엇은 혼자 온다 하니까

아무도 누구를 기다리느냐 묻지 않는다

무대 위는 줄곧 나 혼자니까

 

연극 끝날 때까지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온다는 그 무엇은 혼자라도 끝내 오지 않아

아무도 누구를 기다리느냐 묻지 않을 것이니까

막이 내려와야 그 무엇이 혼자 오길 기다리지 않는 혼자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 벤치는

거기 조리 있는 벤치와는 달리 부조리 연극의 벤치

 

막 또한

올라간 적이 없어 아주

내려오지 않을

부조리의 막

 

연극이 끝난다 해도 나는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니까

 

 

*시집/ 내 죽음, 그 뒤/ 여름언덕

 

 

 

 

 

 

고흐가 고갱을 만났을 때 - 박인식

 

 

아를르에서

고흐가 고갱을 만났을 때

 

열다섯의 내가 남태평양 타히티섬에서

고갱을 만나는 밀항을 꿈꿨을 때

 

귀 자른 고흐를 두고 고갱이 아를르를 떠났을 때

 

그날,

고갱으로 살아가려던 열다섯 살 타히티행 꿈이

고흐가 노랗게 그린

고갱의 빈 의자에 앉아보았을 때

 

고흐의 내가

고갱이 된 나를 앉혀줬을 때

 

그 모든 인연이

운명의 그날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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