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별것도 없는 봄을 기다리다니 - 박찬호

마루안 2022. 2. 19. 21:16

 

 

별것도 없는 봄을 기다리다니 - 박찬호

 

 

회양목 낮은 줄기 사이로 노란 꽃이 필 날도

이제 멀지 않았어

그때가 되면 봄도 오는 게지

겨우내 남극의 펭귄 떼처럼

서로의 등에 기대어 칼바람을 피하던 회양목은

그래서 항상 무더기로 자라는 게지

외롭지 말라고

낮고 작은 것들은 뭉쳐야 산다고

누구도 관심 두지 않는 것들은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한다고

매해가 그렇게 스스럼없이 오고 또 가고

한겨울을 올곧게 이겨 낸 낮은 가지들에게

축복처럼 별빛이 내리는 밤

살아 있으니 보기 좋다

꿋꿋하니 대견하다

 

아직도 그렇게 함께 의지하니 눈물 난다

조금만 지나면 나아질 게야

이제 상원(上元)도 막 지났으니

정말로 봄도 멀지 않은 게지

그렇게 봄은 올해도 또 오려는 게지

분명 벚꽃이 필 무렵에 조용히 오려는 게야

그러면 분명 나아질 게야

 

 

*시집/ 꼭 온다고 했던 그날/ 천년의시작

 

 

 

 

 

 

공감 2 - 박찬호

 

 

때론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가 맞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대와 같은 느낌을 갖는 일

 

그대의 뒷모습만 봐도 그 슬픔을 내 가슴이 느끼는 일

설혹, 그대를 보지 않더라도 그대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항상 그대의 숨결과 살결을 느끼며

눈빛으로도 아는 그대와 같은 감정을 갖는 일

무덤덤하게 내미는 내 손끝의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그것이 회한의 진동인지

희망의 설렘인지를 아는 신묘한 일

그대와 교감하고 그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일

그대를 사랑하는, 아니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일

지금도 내가 그대에게 열정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

그리하여 결국 세상에서 가장 편한

그대의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일

이 모든 것이 나만의 생각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

 

그대와 같은 느낌을 가지는 거라 믿는 일

쉽지만은 않은 일

 

궁금하지만 영원히 알 수 없는 일

 

 

 

 

*시인의 말

 

누군가는 성경을 읽고

또 누군가는 불경을 암송하고

난 습관처럼 김민기 가수의 <봉우리>를 듣는다

그 피안의 봉우리를

 

그런데, 너무 멀리 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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