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혼자 먹는 밥 - 김남권

마루안 2022. 2. 19. 21:08

 

 

혼자 먹는 밥 - 김남권


혼자 먹는 밥은 눈물이 절반이다
젓가락질 한 번 할 때마다 마주 앉고 싶은
한 사람을 떠올린다
싱거운 콩나물무침을 밥에 올려놓고
한참을 망설이던 순간
대학로 어느 분식집 귀퉁이에서 떡라면을 사주던
가난한 시절의 한 사람이 떠올랐다
고춧가루를 털어 넣은 겨울 뭇국 한 숟가락 떠먹다가
앙큼하게 순결을 바치고 떠난
고 계집애가 떠올라 목이 메었다
평생 밥을 혼자 먹었지만, 생의 한 마디를 지나서도
여전히 혼자 먹는 밥은 그리움이 절반이다
김치조각 하나에도 왼쪽 가슴이 떨리는데
아직 봄이 오려면 한 달이나 남았는데
선홍빛 진달래 한 송이는 어쩌자고
눈 밑에 피어나 저 홀로
아롱아롱 눈물을 삼키고 있을까

 

 

*시집/ 나비가 남긴 밥을 먹다/ 시와에세이

 

 

 

 

 

 

페이스메이커 - 김남권


육십 평생을 눈 뜨고 살아왔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다
환갑을 며칠 앞두고 위장 속에
가득 쌓인 슬픔을 죽이려고
살충제를 쏟아부을 때까지,
아무도 손잡아주지 않았고
아무도 소리쳐주지 않았다
지팡이도 없고 점자도 없는 길을
홀로 걸어오느라 지친 어깨를
한순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수인리의 그 산골짝은 지금 아무도 없다
나는 아버지가 가르쳐주지 않은 길을
나 혼자 걸어가느라 참 많이도 부딪쳤다
잔돌 부리에도 걸려 넘어지고
전봇대에도 부딪쳐 이마가 깨지는 날이 허다했다
한 길도 안 되는 얕은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나는 결국 내가 안내해야 할 나의 분신도
만들지 못했다
아, 바람도 가을이 되면
저 홀로 여문다는데
나는 육십 평생 아무도 손잡아주지 않는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는 길 위에 빈 점 하나만
찍으려고 살아남았나 보다



 

 

*시인의 말

 

나비들이 모두 잠든 밤이 되면

나는 밤하늘의 별을 오래 바라본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는 죽어서 모두

나비가 된다는데

이 땅의 모든 아버지는 죽어도 모두

별이 되는 걸까

그리우면 나비가 되는 것일까

사랑하면 별이 되는 것일까

어느 날 밤 내가 올려다본 하늘 가득

하얗게 날아오르던 나비 떼가

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꿈을 꾸지 못하고 있다

이 시집 속을 날고 있는 나비가

별의 이정표를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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