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집으로 가는 길 - 오광석

마루안 2022. 2. 16. 22:50

 

 

집으로 가는 길 - 오광석


해가 미처 떠나지 못한
독산동 거리는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공장 건물 뒤로 연붉은 석양이 칠해졌다
몰려나오는 사람들이 순례자들처럼
식당가로 걸으며 성스러운 풍경화가 그려졌다
그가 그림 속에서 서성였다
검푸른 점퍼에 손을 끼운 채 한 식당 앞에 박혔다
기계의 내일을 위해 윤활유를 부어 주는 일은
늘 그의 몸에도 적용시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항상 출근하는 길보다 짧았다
얼큰하고 경쾌한 귀가가 끝나고
좁은 원룸 속에서 지친 몸을 뉘었다
누워서 바라보는 원룸 창문은 
커다란 캔버스 끈끈한 유화 같았다
그림 속에서 돌아온 그는 
가위로 달을 잘라 반만 걸어 놓았다
나머지 반은 잘게 부숴 별 알갱이로 만들었다
어두운 거리 사방으로 달았더니
별 빛나는 밤거리가 되었다
거리에서 그는 늘 고향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림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즐거웠으나 끝이 나지 않았다
고향 집 문이 보일 즈음
아침 햇살이 창문을 덮쳐 와
눈부시게 그림을 지워 버렸다

 

 

*시집/ 이상한 나라의 샐러리/ 걷는사람

 

 

 

 

 

 

뉴타입 - 오광석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요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에 눈과 귀만 보여요

두 눈에는 소프트렌즈 반짝이고

귀에는 아이팟이 끼워져 있어요

 

사방을 스캔하며 사람들을 피해 가는

그들은 돌연변이일까요

바이러스에 살아남아 진화한 뉴타입인가요

 

식어 가는 세상에 탄생한 신인류

눈으로 말하는 사람들

눈으로 인사하고 가리키고 웃는 사람들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

퇴화되는 입과 혀

 

새로운 종이 도시를 채워 가요

말없이 살아가는 새 시대

가명과 댓글들이 넘치는 공간에서

말을 하지 못해 한숨을 쉬는 나는

도태되어 가는 구인류인가요

 

원룸으로 돌아와 문을 닫아요

창문을 열고 거리의 뉴타입들을 구경하며

홀로 흑백영화 노래를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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