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비행기가 자꾸 같이 살자고 하는데 - 김륭

마루안 2022. 2. 11. 22:46

 

 

비행기가 자꾸 같이 살자고 하는데 - 김륭

 

 

없는 것이다

하늘은,  .....그렇게 생각하니까 혼자

사는 것이다 죽은 줄도

모르는 것이다 몇 달 후 혹은 몇 년 후

어쩌다 발견해 줄 사람은 있겠지만

죽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지만 죽은 사람마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 논다 가끔씩 배달되는

자연 한 박스를 열면 나오는

멸종된 새가 같이 놀자고 떼를 쓰기도 하지만

혼자는 기어코 없는 것이다 밤이 없어서

달과 별을 만들 수 없고 낮이 없어

거울조차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이 되기 위해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인 것이다.

 

문득

 

하늘을 조금 남겨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나 하면서 혼자 사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 본다 저런, 모기가 비행기 흉내를

내고 있다  ......쯧쯧 양미간을 찌푸리면

배달 오토바이로 변한다

나는 아직 잠들 생각이 없는데

꿈이 찾아온다

 

발이 참 작고 하얀

비행기, 당신이 잘못 꾼

꿈이다

 

 

*시집/ 나의 머랭 선생님/ 시인의일요일

 

 

 

 

 

 

월간 벌레 - 김륭


나는 집이
없다 괜찮다, 없는 것도 있어야지
나를 슬금슬금 피하던 집은 갈수록 멀어진다

궁궐 같은 집을 물려받았더라도 나는
팔아 버렸을 것이다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집을 사면
처마 밑에 제비 새끼부터 몇 마리 들여놓겠다던 아버지 앞에
숟가락도 놓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 가자, 도망가는 바람의 다리몽둥이라도 분질러
데려올 수 있는 그런 집이 아니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나는 왕릉을 릉, 릉, 릉, 밀고 다니는 사람
쇠똥을 굴리는 말똥구리처럼 집 없는 설움이란 말을 굴리면
지구보다 둥글고 큰 집이 나오고 한심해 죽겠다는 듯
나를 구경하는 벌레들이 보인다

아빠, 아빤 그 나이에 집도 없이 뭐 했어?

끝까지 들키면 안 된다 하나뿐인 딸아이마저
벌레가 될 테니까 죽은 듯 누워 있던 엄마가 그래야지, 하고
또 끓는다

코로나19로 출입이 통제된 요양병원, 당신은 나를
마치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생명체인 양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득

이젠 정말 사람을 돌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시는 당신이 돌아올 수 없는 집
벌레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집, 없어서 참 좋은
집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나는
한 사람을 또 한 사람으로 꾹
눌러놓았다

 

 

 

# 김륭 시인은 경남 진주 출생으로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 원숭이의 원숭이>,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