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톱니바퀴에 끼어 - 김추인

마루안 2022. 2. 9. 22:12

 

 

톱니바퀴에 끼어 - 김추인

 

 

생체 시계는 누구의 의도된 프로젝트인가 크기나 두께의 정렬도 아니고 자동만도 수동만도 아닌데 내 몸의 시계를 조종하는 너, 누구냐 정밀하다 톱니바퀴들 맞물려 돌아가고 오차 없이 프로그램되어 시행되는 생체의 길

 

살의 톱니바퀴 뼈의 톱니바퀴

숨의 바퀴

피의 바퀴

내장은 내장대로 거죽은 거죽인 채로

내용물이 제 형태를 지키도록

살뜰히도 감싸 안은 가죽 자루의 책무

 

요즘 배설의 톱니바퀴 엇박자로 건너뛰어도 기동력 떨어져 좀 낡았거니 치부했을 뿐 이, 목, 구, 비 쓸 만하다 눙치고 버텼는데 일 났다 전두엽 쪽에서 보내오는 경고 메시지 깜박깜박 까물까물 긴가민가

우주의 톱니바퀴 무심히 돌고 있을 이 시간 나는 탕헤르의 바닷가에서 암고양이 그리자벨라의 '메모리'를 노래하고 있다

 

 

*시집/ 해일/ 한국문연

 

 

 

 

 

 

시나리오 - 김추인
-호모 프로그레시부스Homo progressivus


오랜 후 하나의 설화가 완성될 것이다 그녀의 족속들이 생멸한 후이면 허공은 창랑한 영들의 공기 방울,
방울마다 팽창하는 우주가 즉발의 긴장을 감추고 있을 것이다

소멸을 향한 존재의 여행,
하얀 나래짓은 간단없이 반복되고 잠깐씩 먼 후일 우주의 유골들을 보여주는 빅뱅, 그리고 초신성의 광휘
소멸 중인 족속들이 알게 모르게 불안했을 것이다

오랜 후 거대한 우주의 미라는 어디에 걸려있을 것인가

다시 오랜 후 창궐하는 어둠들이 홀로
유영하고 있을 허
우주가 소멸되기 이전
인식의 주체이던 그녀의 작은 족속들이 폐기되고 없다는 것은 다행 혹은 불행

 

-오래전에 존재한 우주는 아름다웠었다-

완성된 설화를 바람의 귀로 남은 미라가
홀로 듣고 있을 뿐
허에서 허로 유전될,
어디든 있으면서 아무 데도 없을 우주라는 자연을 없는 누가 이 위대를 기록할 것인가.

 

 

 

# 김추인 시인은 경남 함양 출생으로 198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벽으로부터의 외출>, <모든 하루는 낯설다>, <전갈의 땅>, <프렌치 키스의 암호>, <행성의 아이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