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라는 것은 이처럼 유치한데 - 송병호
눈썹에 쓸린 빗물을 손등에 훑는다
쉬 걷힐 것 같지 않다
물먹은 솜뭉치를 업은 소나기구름
시퍼런 칼날에 베인 폭포
창문 너머 얼비친
파전 굽는 뒤태, 비밀을 감춘 실루엣
어느 삼류 화가가 은소반에 흘린
보름달 같다
몇 순배의 잔과 짧은 혀끝 말
파전은 봉분 같고 달덩이 같고
고해하듯 성체의 단말기는 출구를 도모한다
꽃바람은 언제라도 넉넉하지 않다
얍삽한 조갯살 미궁으로 빨려 드는
가장 정직한 동질
급체에 바늘 찔린 외피의 화농
툭 떨어지는 저 붉운 꽃잎
(둘 사이)
이면의 계약서 같은 형식은
필요치 않았다
*시집/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상상인
인연은 그냥 인연이었으면 좋겠다 - 송병호
인연이라는 것이 겉과 곁이 포개졌다 나뉜
하트의 반쪽처럼 상관의 결이 다르듯이
외출을 준비하는 의복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찻잔에 비친 사슴공원의 잔잔한 눈망울로
첫 말을 떼지 못한 그 누군가 바라보는 그믐
돌아보면서 돌아본다는 본성을 인식하거나
언어를 길들여온 문제의 관습은 정작
친숙하게 여겨질수록 더 멀게 느껴지는 것
말씀을 습득하지 못한 미완의 언어일까
지하철 등받이에 기대고 화장을 고치는 여자의
선험적 손가락은 익숙한 생득의 행동이듯
간밤 달의 혀를 핥다 이탈한
눈썹 위의 속말은 자자하다
보이는 것만 듣고 볼 수 없어도 보는
웃음만큼 비워둔 여백
타인으로 되돌아가는 인연일지라도
인연은 그냥 인연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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