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인연이라는 것은 이처럼 유치한데 - 송병호

마루안 2022. 2. 8. 21:46

 

 

인연이라는 것은 이처럼 유치한데 - 송병호

 

 

눈썹에 쓸린 빗물을 손등에 훑는다

쉬 걷힐 것 같지 않다

 

물먹은 솜뭉치를 업은 소나기구름

시퍼런 칼날에 베인 폭포

 

창문 너머 얼비친

파전 굽는 뒤태, 비밀을 감춘 실루엣

어느 삼류 화가가 은소반에 흘린

보름달 같다

 

몇 순배의 잔과 짧은 혀끝 말

 

파전은 봉분 같고 달덩이 같고

고해하듯 성체의 단말기는 출구를 도모한다

 

꽃바람은 언제라도 넉넉하지 않다

 

얍삽한 조갯살 미궁으로 빨려 드는

가장 정직한 동질

급체에 바늘 찔린 외피의 화농

툭 떨어지는 저 붉운 꽃잎

 

(둘 사이)

 

이면의 계약서 같은 형식은

필요치 않았다

 

 

*시집/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상상인

 

 

 

 

 

 

인연은 그냥 인연이었으면 좋겠다 - 송병호

 

 

인연이라는 것이 겉과 곁이 포개졌다 나뉜

하트의 반쪽처럼 상관의 결이 다르듯이

외출을 준비하는 의복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찻잔에 비친 사슴공원의 잔잔한 눈망울로

첫 말을 떼지 못한 그 누군가 바라보는 그믐

 

돌아보면서 돌아본다는 본성을 인식하거나

언어를 길들여온 문제의 관습은 정작

친숙하게 여겨질수록 더 멀게 느껴지는 것

말씀을 습득하지 못한 미완의 언어일까

 

지하철 등받이에 기대고 화장을 고치는 여자의

선험적 손가락은 익숙한 생득의 행동이듯

간밤 달의 혀를 핥다 이탈한

눈썹 위의 속말은 자자하다

 

보이는 것만 듣고 볼 수 없어도 보는

웃음만큼 비워둔 여백

타인으로 되돌아가는 인연일지라도

인연은 그냥 인연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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