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빛 바른 외곽 - 이우근 시집

마루안 2022. 2. 8. 22:15

 

 

 

시집 코너에서 시집 구경을 하고 있는데 어떤 중년 여성이 직원에게 묻는다. "선물 하려고 그러는데 요즘 잘 나가는 시집이 어떤 거죠?" 한쪽을 가리키며 직원이 안내를 한다. "여기에 진열된 책들이 잘 나가는 시집입니다."

 

가까운 곳이라 다 들린다. 직원이 안내한 코너는 흔이 메이저 출판사가 발행한 시집만 모아논 곳이다. 문학과지성, 창비, 문학동네 시집뿐이다. 그 시집들은 책장에 세워서 진열한 것이 아니라 앞 표지가 전부 보이게 바닥에 진열되었다.

 

타고난 아웃사이더인 나는 메이저보다 무명출판사 시집에 더 관심이 많다. 숨어 있는 시집 고르는데 관심을 두느라 곧 시선을 거뒀지만 잘 나가는 시집을 찾던 그 분은 어떤 것을 골랐을까. 모쪼록 좋은 시집과 인연이 닿았기를 바란다.

 

이우근 시집은 내가 찾은 보석 같은 시집이다. 그리 알려진 시인도 아니고 출판사도 생소하다. 그의 첫 시집에서 호기심이 발동했기에 두 번째 시집인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반가움이 앞선다. 동명 이인도 있기에 약력 챙기는 것은 필수다.

 

누구 추천이 아닌 내 스스로 목차와 약력을 살피며 까다롭게 고른 시집에서 실망한 적은 별로 없다. 반면 유명 문인이나 평론가들이 추천한 것을 믿고 덜컥 인터넷으로 주문했다가 완전 실망한 적은 여러 번 있다.

 

어떤 시집은 화려한 등단 이력과 문학상 수상 경력에도 목차와 앞 부분 두어 편만 읽고 끝낸 것도 있다. 그럴 듯한 추천사에 호기심이 발동했으나 바로 식은 것이다. 나는 이런 경험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도 일종의 공부고 수업료다. 그 시인의 특성을 알고 앞으로는 무턱대고 주문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출판 현실에서 나와 코드가 맞는 시집 찾아 읽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실수 끝에 읽어야 할 시인 목록을 정리하는 것도 나름 수확이다.

 

이우근의 시는 따뜻하다. 소시민의 소소한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때론 역설적 표현으로 예리하게 투시하는 문장이 긴 여운을 남긴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싯구를 만나면 그 부문을 반복해서 읽게 된다.

 

 

*사랑이 더러운 것은

너를 감금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포위되기 때문이다.

 

*시/ 당신의 계엄령/ 일부

 

 

*먹고 사는데

지름길이 있는가,

직선이 곡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리 없다.

 

*시/ 줄여줄게요/ 마지막 부문

 

 

*장세(場稅)를 못 낼 형편이라

외곽 담벼락 아래, 여기는

햇살이 참 따끈해요

그냥 모여 질끈 징검다리 놓아요

 

*시/ 오일장 나이키/ 앞 부문

 

 

이우근의 시는 심오한 문학적 이론이나 거창한 미사여구 없이도 이렇게 울림을 준다. 다소 어럽게 느껴지는 이번 시집 제목을 따 왔을 시가 오래 눈길을 끈다. 작은 것을 보듬을 줄 아는 시인의 눈이다.

 

 

*별 거 있는가

행주 없이 상(床)이 빛나는가

바탕이라는 거

외곽이어도

빛 바른 양지.

 

*시/ 조연(助演)/ 끝 부문

 

 

이 시집은 디자인부터 종이 재질까지 소박하면서 친환경적이다. 제목 또한 얼마나 자연 친화적인가. 내용물도 봄볕에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화사하진 않아도 은은한 향기를 품고 있다. 공광규 시인이 아주 적절한 추천사를 썼다.

 

 

*이우근 시를 읽으면서 나는 반어적 표현의 서정과 재미, 아름다움과 놀람을 향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문의 직설어법 시대에 반어적 어법을 시에서 적통으로 이어가는 이우근의 존재가 빛나고 있었다. (.....) 

 

우아와 추악 사이, 진실과 거짓 사이, 실제와 추상 사이를 반어적 표현으로 융합하고 통섭하고 형상하는 이우근 시인이 있는 한 우리 문단은 영속할 것이다. *공광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