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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 조장훈

마루안 2022. 1. 30. 21:06

 

 

 

정말 좋은 책을 읽었다. 요 근래 이렇게 몰입해서 읽은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독성이 있는 책이다. 강북에 살기에 강남 갈 일이 많지 않다. 예전에 직장이 강남에 있을 때도 대치동까지 갈 일은 별로 없었다.

 

이 책은 현재 대한민국 부동산 시세와 학벌 생산지의 중심지로 어떻게 대치동이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대치동에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처음엔 강사로 한때는 원장으로 또 한때는 진학 상담가로 수많은 학생과 부모들을 만났다.

 

대치동에 관해서 만큼은 빠삭한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글도 아주 잘 쓴다. 이 책은 아파트 시세 차익 정보나 어떻게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처세술 책이 아니다. 자기 개발서는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독파하고 나면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대치동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과거에서 현재까지 대치동의 요지경을 보여 준다. 교육열 강국 한국의 한해 총 사교육비가 20조 원을 훌쩍 넘어선 현실이다. 본문에 나오는 일부를 옮긴다.

 

*이명박 정부는 왜 이토록 입학사정관제에 집착했을까? 이 전형에 기대를 걸고 자녀를 지원할 수 있는 학부모는 정해져 있었다. 비로 지식인 엘리트 계층 또는 이들의 지원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적 상층 계급의 학부모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아빠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식당에서 홀 서빙을 하는 엄마를 둔 자녀기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통해 합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학교는 브로커가 되었다. 학부모회에서 부모들의 직업을 조사하고 대학 교수와 전문직 종사자를 추려 이들의 품앗이를 통해 학생들의 스펙 쌓기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선했다. 

 

*자기 집이 따로 있으면서도 전세를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집을 거주 공간으로만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제 집은 단지 사는 곳이 아니라, 전세나 월세를 받기 위한 수단 혹은 머지않은 미래에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한 투자 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가장 확실한 영향을 끼치는 희소한 문화 자본이고, 대치동은 그 학벌 전쟁의 최전선이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여건에서 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전입자들의 행렬이 매년 끊이지 않는다.

 

책에는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흥미롭다. 재력이 있고 사회적 명성이 있어도 자식새끼는 내 맘대로 안 된다고 하소연하는 부모들의 학벌 세탁 꼼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저자의 설득력 있는 문장력과 함께 마치 영화 장면처럼 생생히 나온다. 성적이 변변치 않아 미국 유학이나 기여 입학으로 학벌 위조를 시도할 수 없는 부모는 이런 방법을 택한다.

 

*학업 성적이 뛰어나지 않다면 지방 거점 국립대보다 정시 커트라인이 더 낮은 서울 소재 사립대학의 지방 캠퍼스를 선호한다. 예컨대 강원대보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충남대보다 고려대 세종캠퍼스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중에 연세대나 고려대의 일반대학원, 혹은 쉽게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교육대학원이라도 나오면 대학원 졸업으로 학벌 세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대학은 더 이상 배움의 공간이 아니다. 학벌이라는 간판을 구매하는 곳이다. 그 간판은 상류층에게도 자신의 지위를 대물림하고 자녀를 차별의 고통에서 빼낼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학벌주의가 엄연히 존재하고 자분주의적 계급 질서가 한층 공고해진 상황에서 학벌을 통해 계급 상승 혹은 재생산을 하려는 열망은 점점 더 강력해질 것이다. 학원 사교육을 망치로 내리누르면 두더지 같은 욕망은 다른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 것이 자명하다.

 

후반부에 저자는 사교육을 억압해야 할 사회악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한 반론과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좋은 책은 자극과 반성을 함께 준다. 이 책이 그렇다. 이런 명저를 남긴 저자 조장훈 선생이 대단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