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유행가들 - 김형수

마루안 2022. 2. 12. 19:22

 

 

 

시인 김형수가 쓴 유행가에 관한 에세이다. 저자는 1959년에 출생했기에 한국 유행가의 흐름을 제대로 경함한 세대다. 그러고 보니 1959년에 태어난 시인들이 참 많다. 베이비 붐 세대이긴 해도 유독 눈에 많이 띈다. 1958년 생인 누나 말에 의하면 한 교실에 70명쯤 되었다나? 유시민도 1959년 생이다.

 

구정을 전후해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몇 권의 책과 시집을 읽었다. 밀린 숙제 하듯 미뤘던 책을 읽을 수 있는 연휴가 소중하기 그지 없다. 그리 두꺼운 책이 아닌데도 이 책을 읽으면서 속도를 내지 못한 이유가 있다.

 

책 속에 언급된 노래를 찾아 듣느라 무척 더디다. 궁금한 것 그냥 못 지나치는 편이라 더욱 그렇다. 비교적 뽕짝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도 처음 듣는 노래도 있다. 유행가 역사에서 한국 생활사가 보인다.

 

나는 뽕짝이 트로트 비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아 내기에는 너무나 뜬금 없는 트로트보다 훨씬 생활 밀착형 명칭이다. 뽕작 만큼 유행가의 의미를 제대로 표현한 단어가 있을까.

 

언어가 살아 있는 생물이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뽕짝을 자주 써야 트로트라는 국적 불명의 단어를 밀어낼 수 있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몸 어딘가에 뽕짝 선율이 흐르고 있음을 알았다. 신기 있는 무당처럼 말이다.

 

저자는 특히 한국 유행가의 역사에서 분단으로 인한 단절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단절이 어디 유행가 역사뿐인가. 분단으로 인한 단절은 문화예술사 모든 분야에 단절과 왜곡을 겪었다. 그렇게 사라지거나 변질된 예술인이 얼마나 많은가.

 

이 책에서도 월북했다는 이유로 묻혀버린 유행가 가수와 작사 작곡가들을 언급하고 있다. 한국 근대 대중문화 태동기를 알 수 있는 1930년대 유행가 역사가 분단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것이다. 손실도 이런 손실이 없다. 분단세는 이렇게 가혹한 것이다.

 

저자는 자기를 키운 건 팔 할이 유행가였다고 한다. 저자의 부모가 소박한 선술집을 운영했는데 밥과 술을 사 먹으면 숙식은 공짜였다고 한다. 유랑극단이나 떠돌이 영화사, 약장수 굿패, 국극단 등 당시의 연예인들이 묵었다.

 

그곳에서 주막집 아들로 태어난 저자는 당연히 그 예술인들이 부르는 유행가 선율을 들으며 자랐다. 그렇게 시작된 유행가 인생은 이미자에서 절정을 이루고 나훈아, 남진, 배호, 신중현, 송창식, 양희은에서 1990년대 서태지와 강산에까지 이어진다.

 

물론 그 속에는 시인이 직접 겪었던 1980년 5월의 광주도 들어 있다. 저자가 유독 듣기만 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정태춘의 노래에 애착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대중음악사 연보가 아니다. 유행가가 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면 한국 풍속사가 보인다.

 

저자가 말한 이 대목이 인상적이다. <노래의 생명력은 노래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부르는 자의 마음속에 있다>. 서태지와 BTS가 아무리 유명해도 나는 그들 노래에 공감하지 못했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쯤이라면 모를까. 추억에 젖게 만들며 잔잔한 울림을 주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