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언어의 높이뛰기 - 신지영

마루안 2022. 2. 4. 21:34

 

 

 

몇 페이지 읽으면서 바로 느낌이 오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참 좋은 책을 골랐다는 뿌듯함도 생긴다. 읽는 내내 나의 말습관에 대한 반추와 함께 말 잘하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큰 기술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 책이 화법에 관한 처세술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언어의 사회 현상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성격처럼 언어 습관도 타고난 것이 절반을 차지한다고 본다. 글보다 말이 훨씬 그 사람의 성격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언어학자이자 음성학자인 저자가 쓴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문이 너무 많다. 가령, 언제부터 대통령 당선자가 당선인이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에 무릎을 쳤다.

 

노무현까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는 당선자였다. 이명박 때부터 당선자가 당선인이 되었다고 한다. 신지영 교수는 언론에 나온 보도 내용을 참고해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이 사실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인수위에서 각 언론사에 당선인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발음도 잘 안 되는 이 해괴한 당선인의 유래다. 한자 者가 놈 자인데 고귀한 사람에게 당선자는 무례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책에는 이 행태가 얼마나 한심한 일이었는지 알게 한다. 자자에는 결코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 자가 비하라면 과학자, 교육자, 철학자 등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붙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선인으로 불러 달라는 이명박 관계자의 요청을 적극적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기자다. 당선자가 비하여서 당선인이 되어야 한다면 기자 또한 비하 호칭이니 기인이라 해야 한다. 신문 기자, 방송 기자가 아니라 신문 기인 방송 기인이 되어야 한다.

 

더욱이 표를 주는 유권자는 비하해서 유권자고 당선자는 우대해서 당선인인가. 그동안 어느 누구 하나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 딱 내 마음이다. 저자는 정말 당선자가 비하여서 당선인이라면 유권자부터 유권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이 대목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놈자가 비하라고 여긴 이명박이야말로 열등의식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얼마나 평생 열등감에 찌들었으면 그동안 아무 문제 써왔던 당선자란 호칭에 불편함이 들었을까. 

 

이 외에도 언어 감수성에 관한 꼼꼼한 지적을 공감 백배로 읽었다. 그 사람이 쓰는 언어에는 그가 걸어온 길과 정체성이 온전히 담겨 있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