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중심 - 김기리

마루안 2022. 2. 4. 21:56

 

 

중심 - 김기리

 

 

내게 있던 중심은

다 어디로 갔을까

왜 자꾸 비틀거리던 것들만

내 몸에 깃들고 싶어 할까

그 수많던 얼음 신발은

유독 내 발에만 신겨 있는 걸까

 

바람 부는 날의

한 그루 나무라 여기자

신나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중이었다고 여기자

 

아직 고요가 깃들지 않은 몸이라

이렇게 고마운 휘청거리는 중심

 

그냥, 그냥

휘청대는 중심에 서서

달력 한 장 또 넘어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내가 부축했던 사람들이

흔들리는 나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시집/ 기다리는 시간은 아직 어리고/ 문학들

 

 

 

 

 

 

저울 - 김기리

 

 

저울에는 바르르 떠는 중심이 있다는 거지

반듯이 이쪽과 저쪽이 있어야만

제 몫을 다 한다는 거지

이생에는 업으로 부르는 이름과

침묵해야 할 이름들이 중심에 모여들어

바르르 떨고 있을 거라는 거지

어제는 별생각 없이 우쭐거렸으나

오늘은 그냥 그저 기우뚱대는 것,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거지

어느 쪽이든 제값은 없기 때문일 거라는 거지

이럴 때는 덜어내거나

더 올려놓는 쪽이 있기 마련이지

저울 속에는 항상 제값이 들어 있다는 거지

자꾸만 어느 한쪽으로

기울고만 있는 내 나이들도

이제야 비로소 제값을 하고 있는 중일 거라는 거지

기우는 쪽의 나이가

덜어낼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중심일 거라는 거지

바르르 떠는 중심으로 무여들고 있다는 거지

 

저울추는 항상 중심에서 떨고 있다는 거지

저울 위에 떡 버티고 있던 아픈 덩어리들 끌어모아

되는대로 달아보고 있다는 거지

한 덤벙이 더 올렸다 한 덤벙이 덜어내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거지

쉼 없이 위쪽으로 기울어만 가는 어렴풋한 나이테

내려놓을 것도 올려놓을 것도 없는 밋밋한

기울기라는 거지

제값의 중심도 삭혀 버린다는 거지

힘없는 떨림이 바르르 떨고 있다는 거지

 

 

 

 

 

*시인의 말

 

여기에 묶인 시편들은

내 한살이의

자전적인 이야기 모음이다

 

'서쪽의 나이'가 되어 보니

우주만물이 다 피붙이 살붙이요

불이(不二)임을 알겠다

 

여든다섯 번의 봄은 이미

가랑잎

 

이제부터다

여생(餘生)이 아니라 본생(本生)을 살 것이다

건달바(乾闥婆)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