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떠나던 날들의 풍경 - 이성배

마루안 2022. 2. 3. 19:30

 

 

떠나던 날들의 풍경 - 이성배

 

 

마을에는 오백 년도 넘었다는 느티나무가 있었다.

몸통 여러 곳이 복사뼈처럼 울룩불룩하고

마을 뒷산도 가뿐하게 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뒷산에는 또 너럭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개망초 다발이나 잔대 싹, 쑥개떡이 차려진 소꿉 밥상이

서서히 별 보자기에 덮이던 풍경은

온종일 서럽던 아이들이 차린 것이었다.

 

너럭바위에서 노는 게 심심했던 형과 누나들은

어른들이 낮잠을 자는 사이 몰래 느티나무의 복사뼈를 맨발로 디디고 올라가

제일 높은 곳을 손으로 짚고 내려왔다.

 

얼마 뒤 그런 형과 누나들은

군불을 지피는 어미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도시로 떠났다.

 

뙤약볕 비탈밭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재구네 모친

넷째가 다녀갔는지 복사뼈 닮은 봉분 앞에

개망초꽃 한 다발

 

 

*시집/ 이 골목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고두미

 

 

 

 

 

 

까치설 - 이성배

 

 

처마 아래 동네 아이들이 올망졸망 나란히 서서

해가 높이 뜨기를 기다립니다.

 

그중 나이가 든 아이는 까치발을 하고 손을 뻗으면 고드름을 딸 정도이고

어린아이는 누런 코를 훌쩍이며 삼키는 정도입니다.

 

소매는 모두 해졌고 손목 늘어난 내복이 삐져나와 있습니다.

소매에는 코를 닦은 자국이 허옇게 말라 있습니다.

 

추위 때문에 아이들의 볼은 빨갛고

손톱 밑은 까만데 손은 하얗게 터서 손등도 빨갛습니다.

그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거나 양쪽 겨드랑이에 넣고 있습니다.

 

춥고 심심한 아이들은 고드름을 따서 낄낄거리며 씹거나

칼싸움을 합니다.

 

한 아이가 더 큰 고드름이 달린 곳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다른 아이들도 우르르 달려갑니다. 그때

눈밭에 내려앉았던 참새들도 까맣게 날아올랐습니다.

 

낄낄거리며 기억을 나눌 사람들이 하나둘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는 것

 

쓸쓸함은

천천히 오래 걸려 알게 되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