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런 사람을 누구라고 부르는가 - 이정희

마루안 2022. 1. 29. 19:26

 

 

그런 사람을 누구라고 부르는가 - 이정희

 

 

매운 연기의 아궁이로 몇 년 살다가

부글부글 끓는 밥솥으로 몇 년 살다가

다시, 솥뚜껑 들썩이는 화로 몇 년을 살았다

 

조리로 쌀알 일어 안치면 밥물이 자작자작

밥이 누룽지듯

속이 타고 입술이 타는

그런 시간들이 지났다

한 칸 한 칸 정량의 물이 소진되듯

무수한 반복으로 뜸을 들였다

그렇게 찔끔찔끔 물의 공간에서

불의 일렁거림을 거쳐

누룽지는 잔불의 시간

찬장 밑 막걸리가 식초로 발효되는 동안

두껍게 얇게 한 생애가 눌어붙는다

 

빈 아궁이로 식어가다

시커멓게 그을린 천정처럼 막막해지고

시래기처럼 햇살의 기울기에 뒤채는 그런 사람

어둡고 칙칙한 그 살강을 건너지 못하고

그을음으로 남은 사람

 

매운 연기도 없이 밥을 짓고

그을린 천정도 없는

눅지 않는 밥솥의 바닥 같은

그런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집/ 꽃의 그다음/ 상상인

 

 

 

 

 

 

이유는 눈물 - 이정희

 

 

어릴 적 내 눈에 까만 티가 들어

세상의 모든 것이 순간 사라졌는데

그대로 그렁거리는 눈을 감고 싶었는데

엄마는 눈을 엄지와 검지로 벌려

훅, 그 한 모금의 입김을

내 눈 속으로 불어넣었다

그때마다 엄마가

내 눈 속에 들어 있다

 

산 사람들의 눈엔

죽은 사람들이 눈물로 살아 있다

그건 세상을 빛으로 열어 준

산 사람들의 눈물 대접이다

 

내 눈은 갈수록 비좁아지고

올해는 찔레꽃 덤불도 넣지 못했다

눈 속에는 아직 뭉쳐야 할

눈뭉치도 있다

지나간 숨결들이

눈동자로 살아 숨 쉬지만

사라질 듯

가물가물해지는 것도

눈물이 허물어져서 그렇다

 

내가 없는 눈 속에

첫눈의 눈물이 다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