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을 누구라고 부르는가 - 이정희
매운 연기의 아궁이로 몇 년 살다가
부글부글 끓는 밥솥으로 몇 년 살다가
다시, 솥뚜껑 들썩이는 화로 몇 년을 살았다
조리로 쌀알 일어 안치면 밥물이 자작자작
밥이 누룽지듯
속이 타고 입술이 타는
그런 시간들이 지났다
한 칸 한 칸 정량의 물이 소진되듯
무수한 반복으로 뜸을 들였다
그렇게 찔끔찔끔 물의 공간에서
불의 일렁거림을 거쳐
누룽지는 잔불의 시간
찬장 밑 막걸리가 식초로 발효되는 동안
두껍게 얇게 한 생애가 눌어붙는다
빈 아궁이로 식어가다
시커멓게 그을린 천정처럼 막막해지고
시래기처럼 햇살의 기울기에 뒤채는 그런 사람
어둡고 칙칙한 그 살강을 건너지 못하고
그을음으로 남은 사람
매운 연기도 없이 밥을 짓고
그을린 천정도 없는
눅지 않는 밥솥의 바닥 같은
그런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집/ 꽃의 그다음/ 상상인
이유는 눈물 - 이정희
어릴 적 내 눈에 까만 티가 들어
세상의 모든 것이 순간 사라졌는데
그대로 그렁거리는 눈을 감고 싶었는데
엄마는 눈을 엄지와 검지로 벌려
훅, 그 한 모금의 입김을
내 눈 속으로 불어넣었다
그때마다 엄마가
내 눈 속에 들어 있다
산 사람들의 눈엔
죽은 사람들이 눈물로 살아 있다
그건 세상을 빛으로 열어 준
산 사람들의 눈물 대접이다
내 눈은 갈수록 비좁아지고
올해는 찔레꽃 덤불도 넣지 못했다
눈 속에는 아직 뭉쳐야 할
눈뭉치도 있다
지나간 숨결들이
눈동자로 살아 숨 쉬지만
사라질 듯
가물가물해지는 것도
눈물이 허물어져서 그렇다
내가 없는 눈 속에
첫눈의 눈물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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