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주름에 경배한다 - 김일태

마루안 2022. 1. 27. 19:31

 

 

주름에 경배한다 - 김일태

 

 

주름졌다는 것은

기운 빠졌다는 게 아니다

나를 접었다는 것이다

나를 내어주면서 너를 편안히 받아들일

힘이 쌓였다는 것이다

 

오냐오냐 한마디로

투정 철부지 짓 다 받아주시던 어머니의 포근함은

주름의 힘이었다

뒷산 소나무가 바람을 견뎌낸 것

다 주름의 힘이었다

 

주름을 만든다는 것은

나를 버려 너를 버는 일이다

하늘과 다투지 않는 요령으로 농투성이들이

논밭에 이랑과 고랑을 짓듯이

주름에 경배하라

 

 

*시집/ 주름의 힘/ 시선사

 

 

 

 

 

 

동지(冬至) 건너 동지(同志) - 김일태

 

 

동지쯤이었던가

밝음은 짧고 어둠은 까마득하던 그때

동지로 다가와서

내 안의 석등의 되어

삼동의 절망과 희망을 까무락 까무락

하, 서른일곱 번이나 달고 짜게 건너와서

다시 한번 맞이하는 삼동의 들머리

이제는 떨 일도 없는데

큰 목소리로 불러야 들릴 만치

사는 맛이 거세진 그대여

무뎌져 가고 있다는 것은

실은 서로 외롭다는 몸짓 아니겠는가

신이 등 쪽에 가려워도 손이 닿지 않는 곳 두었듯

사랑을 위해

제 마음으로 달랠 수 없는 빈 데를 두었다는 것

서로 마음 빌려야 메꿀 수 있는 데가 있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 아니겠는가

아직 팔베개가 부끄러워 손사래치는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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