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꽃이라는 기호의 모습 - 강재남

마루안 2022. 1. 17. 21:48

 

 

꽃이라는 기호의 모습 - 강재남


우는 법을 잘못 배웠구나 

바람은 딴 곳에 마음을 두어 근심이고 환절기는 한꺼번에 와서 낯설었다 오후를 지나는 구름이 낡은 꽃등에 앉는다 매일 같은 말을 하는 그는 옹색한 시간을 허비하기 위해서다 

눈시울 붉히는 꽃은 비극을 좀 아는 눈치다 비통한 주름이 미간에 잡힌다 구름의 걸음을 가늠하는 것만큼 알 수 없는 꽃의 속내

연한 심장을 가진 꽃은 병들기 좋은 체질을 가졌다 그러므로 생의 어느 간절함에서 얼굴 하나 버리면 다음 생에도 붉을 것이다 

얼굴이 수시로 바뀌는 계절에는 풍경이 먼저 쏟아졌다
헐거운 얼굴이 간단없이 헐린다 

낭만을 허비한 구름은 말귀가 어둡다 색을 다한 그가 급하게 손을 내민다 구름이 무덤으로 눕기 전에 꽃은 더 간절해져야 하므로

 

울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친절한 인사를 한다 피우다 만 꽃이 더러 마르고 목을 늘인 꽃대가 꽃색을 잃었다 바람과 내통하는 꽃의 비밀을 읽는다 

웃을 때 생기는 습관이야 눈시울 붉히는 꽃이 말했다 그는 눈물에 능하다 달콤한 거짓이 참말을 밀치고 저만치 피어있다 눈가가 함부로 붉었다 

바람이 간지러워 꽃잎을 뜯었을 뿐이야 

웃음이 무성한 꽃밭은 변명의 목소리가 일정하다 지나가던 구름이 바람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시집/ 아무도 모르게 그늘이 자랐다/ 달을쏘다

 

 

 

 

 

 

바람의 사생활 - 강재남


저녁을 필사한다 꽃송이가 비틀린다 어둠에 물든 꽃대가 자세를 바꾼다 소리는 바닥으로 고이고 낮게 깔린 문장

글자에 어두운 나는 글자를 읽어내지 못하고

어제 불었던 바람이 소문을 퍼트린다 소문의 씨앗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란다 함부로 벙글은 꽃숭어리가 긴밀하다

세상을 둥글게 보고 싶어 동그랗게 등을 말았다 정중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는 우리, 우리라는 이름은 습한 곳에서 자라는 비밀

앞에서 웃고 돌아서면 뒤가 간지러운 건 바람이 짙어서라고, 그리고 나는 생이 위태로운 사람

고요해지는 순간까지 몸을 웅크린다

그리하여 이생은 이쯤이면 되겠다 모든 빛나는 것에서 놓여나거나 가장 낮은 자리에 영혼을 놓았으니

빗금을 긋는 시간이 읽을 수 없는 형태로 무너진다 그곳은 보는 대로 보이는 내가 있었으면

맨발로 걷는 어둠이 무겁다 갈 곳 없는 바람이 다른 몸으로 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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