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꿈꾸는 구둣방 - 아지오

마루안 2022. 1. 15. 22:09

 

 

 

옷은 조금 크거나 작아도 입을 수 있으나 신발은 곤란하다. 조금 작다 싶으면 발가락이 아프고 헐렁하면 양말이 벗겨지거나 뒷굼치에 물집이 생기기도 한다.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이 중요한 이유다.

 

이 책은 구두를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다. 특정 저자를 내세우지 않고 구두 브랜드인 아지오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구둣방의 탄생 과정과 지향하는 바를 감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읽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라고 할까.

 

두 인물을 주죽으로 끌고 간다. 구둣방 대표인 유석영과 구두 장인 안승문이다. 구두점으로 성공해 돈을 번 소상공인의 성공담이었다면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돈을 밝히는 사람이지만 재테크나 성공담에 관심이 없다.

 

이 구둣방의 정식 사명은 <구두 만드는 풍경>이고 아지오(AGIO)는 수제화 상표다. 그리고 대부분의 직원이 청각장애인이다. 이런 취약계층의 일거리 창출이 주 목적인 기업을 <사회적 협동조합>이라고 한다. 대표인 유석영도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다.

 

구두 장인 안승문은 이런 유석영의 기업 철학을 이해하고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이 회사와 함께 하고 있다. 그는 구두 만드는 일뿐 아니라 청각장애인 초짜 직원에게 수제화 기술을 가르쳐 기술자로 길러 내는 일까지 하고 있다.

 

이 구둣방은 2010년에 설립했다가 자금난으로 2013년 문을 닫았다. 그러다 2017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신은 낡은 구두가 화제에 올랐다. 문대통령의 굽이 닳은 그 구두가 아지오로 밝혀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몇 년 전에 유석영이 청각장애인이 만든 수제화를 팔기 위해 백방으로 뛰던 중 국회까지 찾아가 홍보한 적이 있는데 당시 문재인 국회의원이 장애인의 갸륵한 마음에 공감을 하고 이 구두를 샀던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사고 싶다는 전화가 빗발쳤으나 구둣방은 이미 문을 닫은 후였다. 어떤 사업가는 자금을 댈 테니 공장을 차리자는 제안까지 했다. 유석영은 예전의 고생을 생각하면 구둣방 여는 일이 망설여졌지만 유시민의 응원으로 다시 공장 문을 연다.

 

아지오의 시즌2인 셈이다. 이효리, 변상욱 등 유명인들이 아낌 없이 모델로 나섰다. 문대통령의 낡은 구두가 아지오를 다시 살린 동력이 된 것이다. 유시민 등 유명인들의 모델료는 자그마치 아지오 구두 한 켤레였다.

 

아지오가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직원도 늘고 공장 시설도 훨씬 나아졌다고 한다. 이따금 다른 구두 업체 사람들은 왜 구두 공장을 임대료 비싼 지상층에 두냐고 충고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봉제공장이나 수공업체, 하청업체들은 반지하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는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석영은 비용은 더 들더라도 지상층 공장에서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환기가 되는 환경에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긴 돈만 바란다면 장애인보다 비장애인 직원을 채용해 더 많은 구두를 만들면 된다. 유석영은 회사 설립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장애인 직원이 우선이다. 거기다 안 보이는 대표와 안 들리는 직원들이 함께 일하기는 쉽지 않다.

 

수어로 의사 소통을 하는 청각장애인의 손과 몸짓을 시각장애인 대표는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수어통역사가 공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장애인들은 금방 이해가 안 되거나 공감이 느리게 올 사항이지만 이들에게는 생존권 문제다.

 

이런 기업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나는 절반만 자격이 있다. 아직 아지오 구두를 신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조만간 아지오 구두를 신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으로 올 겨울은 조금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