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이란 - 안태현
영덕에서 일출을 보고 오는 길에
삼중 추돌 사고를 당했다
당신은 새해 액땜한 셈 치자고 말했으나
나는 이 좋은 세상에서
때마침 오가는 일을 생각했다
먼 산에 흩날리는 눈보라
엉겁결에 얻어 입은 죽은 사람의 옷 한 벌
알몸에 걸치고 있었다
떠나본 일이 없는데
나를 여기에 둔 채 저곳으로 빠져나가
이마트 정육점에서 저녁에 먹을 고기를 고르고
겨울딸기를 먹으며
티브이 뉴스 속의 나를 구경한다면
밤의 심심함으로부터 후생이 시작될 것이다
고속도로에 낭자한 피 한 방울 없는데
타이어들이 슬금슬금 비켜 간다
나는 이미 피비린내다
나는 이미 끊어진 운명선을 쥐고
사라진 것들 뒤에 숨어서
다정다감한 가장의 위엄을 잃었다
우리가 만난 건 몇십 년
헤어지는 건 찰나
나는 알 수 없는 냉정함 속으로 사라질 테니
착한 당신은 내 몫의 미래를 들고
환한 쪽으로 뛰어라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라
그게 사람이다
*시집/ 최근에도 나는 사람이다/ 상상인
탄성 - 안태현
뉘엿뉘엿 저무는 몸속에서
낮게 나는 새 떼들이 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때가 있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이
삭아서 툭, 하고 끊어지면
노숙이라는 거고
은근하게 당겼다 놓았다 하며
해남이나 통영 같은 곳을 떠도는 일은
여행이라는 거다
화창한 동대구역
출장을 다 마친 뒤의 산뜻한 공기가 데려온
두 갈래의 망설임
혹은 힘
고무줄을 당겼다 놓으며
상행선과 하행선이 합창이 되는 시간
매일 같은 레퍼토리가 되풀이되는 그 길을 따라 결국 나는
수저 두 벌 놓인 식탁으로 돌아간다
잡은 물고기를 냉큼 뱉어내는
가마우지처럼
사는 것이 참 천연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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