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람의 일이란 - 안태현

마루안 2022. 1. 9. 19:28

 

 

사람의 일이란 - 안태현

 

 

영덕에서 일출을 보고 오는 길에

삼중 추돌 사고를 당했다

당신은 새해 액땜한 셈 치자고 말했으나

나는 이 좋은 세상에서

때마침 오가는 일을 생각했다

 

먼 산에 흩날리는 눈보라

엉겁결에 얻어 입은 죽은 사람의 옷 한 벌

알몸에 걸치고 있었다

 

떠나본 일이 없는데

나를 여기에 둔 채 저곳으로 빠져나가

이마트 정육점에서 저녁에 먹을 고기를 고르고

겨울딸기를 먹으며

티브이 뉴스 속의 나를 구경한다면

밤의 심심함으로부터 후생이 시작될 것이다

 

고속도로에 낭자한 피 한 방울 없는데

타이어들이 슬금슬금 비켜 간다

나는 이미 피비린내다

나는 이미 끊어진 운명선을 쥐고

사라진 것들 뒤에 숨어서

다정다감한 가장의 위엄을 잃었다

 

우리가 만난 건 몇십 년

헤어지는 건 찰나

나는 알 수 없는 냉정함 속으로 사라질 테니

착한 당신은 내 몫의 미래를 들고

환한 쪽으로 뛰어라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라

그게 사람이다

 

 

*시집/ 최근에도 나는 사람이다/ 상상인

 

 

 

 

 

 

탄성 - 안태현

 

 

뉘엿뉘엿 저무는 몸속에서

낮게 나는 새 떼들이 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때가 있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이

삭아서 툭, 하고 끊어지면

노숙이라는 거고

은근하게 당겼다 놓았다 하며

해남이나 통영 같은 곳을 떠도는 일은

여행이라는 거다

 

화창한 동대구역

출장을 다 마친 뒤의 산뜻한 공기가 데려온

두 갈래의 망설임

혹은 힘

 

고무줄을 당겼다 놓으며

상행선과 하행선이 합창이 되는 시간

 

매일 같은 레퍼토리가 되풀이되는 그 길을 따라 결국 나는

수저 두 벌 놓인 식탁으로 돌아간다

잡은 물고기를 냉큼 뱉어내는

가마우지처럼

 

사는 것이 참 천연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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