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짜도 모르는 가짜뉴스 - 정덕재

마루안 2022. 1. 7. 22:37

 

 

가짜도 모르는 가짜뉴스 - 정덕재

-가짜뉴스박멸법 제정

 

 

밤이 아니라 낮이에요

가로등 불빛이 환한데 밤이라고요

누가 봐도 낮이죠

가로등이 졸고 있다고요

그건 김수희 노래에나 나오는 말이죠

가로등 아래에서 사람이 졸고 있다는 말이군요

 

2021년 6월 21일 저녁 10시 30분 대전시 오류동 우체국 앞에 있는 술집에서 취객이 가로등도 졸고 있다는 가수 김수희의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가로등이 깜박깜박 졸았다

 

'가로등을 졸게 만든 취객 알고 보니 김수희 팬'

'가로등을 졸게 만든 한국전력 관계자 당직 중에 깜박 졸아'

'가로등 아래 노상방뇨하던 시인 감전으로 졸도할 뻔'

 

가로등 아래에서 졸았을 뿐인데

가로등이 졸았을 뿐인데

가짜뉴스는 문맥이 끊긴 말줄임표 같은

점멸신호를 보내며

순간순간

거짓 구호를 만든다

 

가로등이 조는 동안

난독증 기자들은

주어와 목적어와 서술어를 고르다가

주어가 달아났다는 사실을

사흘이 지난 뒤에야 눈치를 챘다

 

 

*시집/ 대통령은 굽은 길에 서라/ 스토리밥

 

 

 

 

 

 

기자와 쓰레기 - 정덕재

-기레기처벌법 강화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이다

모욕적인 비속어로 기자를 비하하거나

비아냥거릴 때 쓰인다

 

기레기라는 말을 듣는 기자와

기레기라는 말을 듣는 쓰레기 가운데

누가 더

모욕적으로 받아들일까

 

수박화채를 먹고

껍질을 버리러 간 음식물수거함 앞에서

가족들이 모여 치킨과 맥주를 마시고 난 뒤

병 다섯 개를 들고 나간 분리배출함 앞에서

쓰레기를 욕되게 할 수 없지 않은가

 

자신의 몸을 50리터 쓰레기봉투에 담아

구르고 굴러 쓰레기 통으로 향하는

반성의 시간을 가질 때

쓰레기통은 기레기를 받아줄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이다

 

세상의 쓰레기통은

모욕을 담는 게 아니라

쓰레기를 담는다

 

 

 

 

*시인의 말

 

혐오의 불신은 정치와 동행한다.

불순한 시대는 상상을 요구한다.

가끔은 선전과 선동이 필요하다.

낡은 길이어도 가야 할 길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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