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 映

국도극장 - 전지희

마루안 2021. 12. 15. 22:19

 

 

잔잔하면서 울림이 있는 영화다. 흥행 때문인지 갈수록 영화가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시대에 이 영화는 보기 드물게 시적인 작품이다. 법대를 나왔으나 만년 고시생으로 세월을 보내던 기태(이동휘)는 고향인 벌교로 내려온다.

 

고향에 왔으나 모두가 서먹하기만 하다. 엄마는 오직 형만을 챙기고 오랜 만에 보는 친구들도 대면대면하다. 모두들 법대 나왔으니 성공할 줄 았았으나 땡전 한 푼 없이 내려온 기태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생계를 위해 읍내 극장에 매표원으로 취직을 한다. 이 극장 이름이 국도극장이다. 전지희 감독이 서울 을지로에 있던 국도극장을 이곳에 소환한 것이다. 지방 소읍의 극장으로 어울리지 않지만 기태는 그곳에서 간판을 그리는 오씨를 만난다.

 

오랜 만에 만난 동창생 영은(이상희)은 가수 지망생으로 억척스럽게 살고 있다. 기태는 어릴 때부터 오직 장남만 챙기고 자기를 찬밥 취급했던 어머니와 형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다. 엄마 생일날에 형과 크게 다툴 정도로 둘 사이는 물과 기름이다.

 

게다가 치매까지 온 엄마를 두고 형이 이민을 가는 바람에 엄마까지 떠 안는다. 치매 때문에 요양원으로 떠나는 엄마와 나란히 앉은 배 안에서 난생 처음 엄마에게 선물을 한다. 빨간 립스틱이다. 참으로 영화적이면서 시적이다.

 

이렇게 뻘건 것을 어찌 바르냐며 누가 보면 노망 났다고 할 거라는 엄마의 말에 아들이 대답한다. "노망 났잖어?" 뽕짝 선율이 흐르는 이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메모하고 싶을 만큼 귀에 착 붙는 대사에다 이동휘, 이한위, 신신애, 이상희 등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도 볼 만하다.

 

누구나 꿈을 갖고 살지만 그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태는 이제 서울이 무섭다면서 고향에 눌러 살까 결심을 한다. 멀티플렉스가 대세인 시절에 과연 국도극장은 앞으로도 영화를 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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