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빠진 나사 - 김승강

마루안 2021. 12. 9. 21:55

 

 

빠진 나사 - 김승강


나사가 하나 방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어디서 빠진 놈일까
빠진 나사를 주워들다 말고
엎드려 장롱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동전이 몇 닢 떨어져 있다
동전은 언제부터 저기 있었나
내가 모르는 새 뭔가 은밀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불안하다
아직 일상은 별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다
나사 하나를 잃은 그는 자기 몸에서
나사가 하나 도망갔다는 걸 알고나 있을까
알게 된다면 일상은 어떻게 변할까
불안했던 이유를 알겠다
빠진 나사 때문이다
빠진 나사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길바닥을 유심히 살펴봐라
집을 뛰쳐나온 개들이 길거리를 몰려다니듯
빠진 나사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다
드디어 저녁 뉴스
자동차가 한 대 길 위에서 찢어졌다
빠진 나사 때문은 아닐까
제 자리를 찾아주려다 포기하고 던져버린
빠진 나사는 지금쯤 어디서 웃고 있을까

 

 

*시집/ 회를 먹던 가족/ 황금알

 

 

 

 

 

 

독거 - 김승강

 

 

어젯밤 나는 자다가 죽었다

창빛이 밝아오고

엘리베잍터 승강이 잦은 걸 보니

또 하루가 시작된 모양이다

이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다

아직 아무도 내 죽음을 모른다

아파트 꼭대기 층에 홀로 누워있는 내 주검이

언제 발견될지 알 수 없다

잠시 만났던 여자 외에

여길 찾아온 사람은 여태 아무도 없었다

일 년에 한두 번 통장이 호구조사 차 오긴 했었다

그렇지, 또 있다 가스점검원,,,,,

그때까진 너무 멀다

내 주검이 썩은 냄새를 풍기기 전에 발견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일 당장 발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약속이 있는데 내가 나타나지 않고

연락도 없으면 내일쯤 나를 찾을 수도 있겠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처음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 본다

처음으로 하는 기도이니만큼 신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마침 나는 어제 낮에

이러려고 그랬는지

목욕을 하고 팬티도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니까 나는 깨끗하게 죽음 셈이다

다행이다

돌이켜보면 살아 있을 때 늘 전전긍긍했었다

팬티가 늘 깨끗할 수는 없지 않은가

죽음이 의외로 평화로웠고

빨리 발견되기만 한다면

내 죽음은 호상이다

내 삶에 만족한다

 

 

 

 

# 김승강 시인은 1959년 경남 마산 출생으로 경상대 대학원 중문과 석사를 졸업했다. 2003년 <문학.판>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흑백다방>, <기타 치는 노인처럼>, <어깨 위의 슬픔>, <봄날의 라디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