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렇게 아슬하게 - 박남원

마루안 2021. 12. 9. 21:47

 

 

그렇게 아슬하게 - 박남원

 

 

어떻게 살았겠는가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그런 힘겨운 이야기들.

도무지 알 수 없는 질문과 대답을 뒤로 하고 술자리도 파한 자리

나는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엔 퇴로 없는 쓸쓸한 내 옥탑방으로 귀환하게 되지.

 

지독한 몸살 기운으로 비틀거리는 나를

후미진 골목까지 따라와 마지막까지 애써 배웅해주던

아슬아슬한 저 가로등 불빛.

 

그 불빛마저 뒤로 하고 텅텅거리는 외부 철계단을 거슬러 올라

싸늘한 냉기 감도는 방바닥에 발을 들이면

살아도, 살아도 결국 이곳은 이방인의 낯선 자본주의였다.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결론이 나지 않을 이야기들.

그래도 못다 한 말들은 어쩔 수 없이 밤하늘 먼 별들에게 돌려보내고

언제나 뒤에 남겨진 채 버텨보지만

숱하게 넘어지고 쓰러지는 일이 늘 있는 우리의 일상 아니었었나.

 

이 황량한 들판에 언제나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나갔지만

애써 붙들고 있던 가지 끝에서 마침내 손을 털고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 같은

그 한순간의 평화,

허전하고 아슬아슬한 그런 평화의 위안 하나쯤으로

우리는 지금껏 내내 살아오지 않았던가.

 

 

*시집/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어느 날/ 도서출판 b

 

 

 

 

 

 

겨울 수기리에서 - 박남원

 

 

하늘로 이어지는 외줄 동아줄이기나 한 듯

끝없이 이어지는 한 줄기 지리산 길.

눈 그친 지 이삼 일 지나

햇빛과 그림자 번갈아드는 외진 마을로 가는 하늘길.

십 리 길 가듯 걷다 보면

길과 온 산을 뒤덮은 눈들, 눈 속에 눈들이 사무치고

사무치다 산굽이를 타고 넘어 아득히 사라지고

종내는 흐릿하던 세상마저도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인가 서너 채.

가래 끓는 기침소리 잠시 들렸다가 이내 다시 적막해지고 마는

해 질 무렵 산중 마을의 허기.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

길과 바람이 눈 위에 마지막 짐을 내리고

드리워진 산그늘 사이로 애써 하늘을 바라보는 곳.

산동면 수락폭포 위 그 너머 하늘 끝 마을.

세상 다 돌려보내고 나서 남은 허기와

그 위에 들어선 아슬아슬한 평화.

눈 덮인 산등성이를 어슬렁거리며 넘는

그리움으로 희미해진 저녁노을 한 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