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숟가락에 대한 단상(斷想) - 김용태
운명이라는 게, 늘
과녁 한가운데로 날아가 박히는
화살 같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재주 비상하여 삐져나오던 발톱 애써 감추고
묵묵히 뿔 벼리어 날을 세우던 친구가
뜻 이뤄 법복을 입게 되었다는 소식 전하더니
어느 날 중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게 3년쯤 전이다
퇴근길, 동창한테서 전화가 왔다
왜, 거시기 박사 있잖냐, 판사하다 중 된
갸가 오늘 아침 밥 숟가락 놨다고 하더라
도저히 이 세상 하고는 안 맞았는게벼
그날 저녁 꾸역꾸역 밥을 넘기며 드는 생각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산다는 건 결국 손목 들어 입(口) 봉양하는 일,
숟가락 꽉 잡고 놓지 않는 일 아닌가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오늘의문학사
시립 병원에서 - 김용태
혼자 사는 친구가 입원한 병실을 찾았다
뭍에 나온 고기처럼 낯설다
젖은 눈으로 떨어지는 수액만 무심히 쫒다가
지금까지 마셔 온 술이, 다 눈물이 되었는지
그치질 않는다고 했다
가족력이 더해졌다고 했다
삼시세끼 따스한 밥을 보장해주는
고마운 이 병력 (病歷)을 물려준 어머니 아버지가
이제는 누구인지 궁금하다고,
가끔씩 꿈에 보이는 사람이
어머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며
마른 손 힘없이 내게 주었다
머지않은 날
저리 그리던, 얼굴도 모르는 부모와 만나게 될 것 같기만 한
그의 손이 아직은 따스하였다.
# 김용태 시인 충남 공주 출생으로 2016년 <문학사랑> 신인작품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대전 문인협회 회원, 2021년 대전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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