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는 행인 3이다 - 김추인

마루안 2021. 12. 10. 22:22

 

 

나는 행인 3이다 - 김추인

-호모 사피엔스의 幻

 

 

여기는 다중 우주, 다중의 내가 포착되는 교차로다

 

틀림없다 저 뒤태의 낯익음

민망스럽고 들키고 싶지 않은 저 어정쩡한 면상의 각도

나의 행색을 패러디한

나의 면상에 환을 친

그가 광화문을 횡단하고 있다 발밑에, 출구 없는 동굴이 있을 것이다

 

입구는 멀고 출구는 지난해야 한다는

그래서 문은 늘 손닿지 않는 아득함이 덧쌓인

그리움일 것

 

언젠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문을 따고 들어가 그 생각의 행간에 마땅치 않은 내 사유물을 접어 넣었음에 틀림없다 저 우그러진 표정 뒤에 내가 숨어 있음이라는 유추성 판단이 조립되는 것만 봐도

 

기시감의 골목, 솟을대문 앞이다 쫄바지를 입은 6살 상고머리 아이의 낯짝은 닫힌 문 안인지 내내 뒤통수뿐이다 시간의 세포들 매 순간 찌들고

 

이제 누구의 뒤통수에도 묻어있지 않을 아이의 울음, 내 망막 속 물증들에도 더 이상은 포착되지 않는 대신 웬 영문일까 싶게 저 낯선 무수한 면면들에 묻어있는 낯익음은

음흉과 비겁, 무심과 연민, 조(躁)와 울(鬱), 늙음과 젊음

나, 나, 나, 나

거리를 지나는 모든 그들은 행인 3이다 나다

 

 

*시집/ 해일/ 한국문연

 

 

 

 

 

 

부메랑 - 김추인

-호모 쿠아에렌스Homo quaerens

 

 

던지면 돌아온다 어떤 양력과 회전력이 엇갈리며 어느 특이점에서 돌아섬이 결정되는가

 

젊은 날 내 사랑은

변죽도 없이 총총 떠나던 머리칼

싸늘히 흩날리던 뒤태가

어느 지점에서 돌아섰던가

쑥스럽게 내밀던 낯익은 손

잡았던가

놓았던가

없었던 일처럼 숲을 걸었던가

 

무거운 줄도 모른 채 세상을 들고 달렸었다 계속되는 문 열기에 골몰하다 숨 고르기도 잠시 지친 발 앞 사방에 늘어서던 문을 기억한다

 

두더지 머리통처럼 쉼 없이 돋아나던

문, 문, 문,

문을 따느라 평생을 탈탈 탕진하다니...

견고할수록 난해할수록 기쁨의 비례로 되돌아오던 문 열기의 방정식은 풀 수 없는 공식의 부메랑이었다

 

 

 

 

# 김추인 시인은 경남 함양 출생으로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8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벽으로부터의 외출>, <모든 하루는 낯설다>, <전갈의 땅>, <프렌치 키스의 암호>, <행성의 아이들>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