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 이윤설

마루안 2021. 12. 5. 19:37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 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려 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구나

꺼내놓고 보니, 내가 삼킨 새들이 지은
전생이로구나
나는 배가 쑥 꺼진 채로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점점 투명하여 밝게 비추는 이 봄

저 세상이 가깝게 보이는구나

평생을 소리없이 지옥의 내장 하나를 만들고
그것을 꺼내보는 일
앞발로 굴려보며 공놀이처럼
무료하게 맑은 나이를 보내어보는 것

피 묻은 그것

내가 살던 집에서 나와보는 것

너무 밝구나 너무 밝구나 내가 지워지는구나

 

 

*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문학동네

 

 

 

 

 

 

이 햇빛 - 이윤설


나에게 닿는 이 햇빛은 얼마나 멀리서 왔는가


이 빛의 실마리 끝을 잡아 리본을 묶어서 다시 놓아준다


햇빛은 처음 시작된 곳으로 되감아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돌아가기까지 얼마나 먼 거리인가


나는 나의 자리가 없이 떠돌아다녀야 했는데

 

지구의 먼지조차 우주로부터 오는 중이다


나는 나의 돌아갈 길이 그렇게 먼 것이


그 선물이 무엇이었는지


두고 온 상자의 리본은 끌러보지도 못하였는데


우리는 날아가며


네가 놓아준 빛을 우연히 조우할지도 몰라서


저 태양에는 내 묶은 리본 하나가 아주 작게 있을까


순간이 걷히어가는 저 먼 거리까지


다시 묶어주고 작별인사를 하며


나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가 보내온 성탄엽서 한 장처럼


멀리 우주로 팔랑이며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