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우리를 스쳐간 것, 우리가 스쳐간 것 - 강건늘

마루안 2021. 12. 2. 22:06

 

 

우리를 스쳐간 것, 우리가 스쳐간 것 - 강건늘


허연 쌀알 하나
서쪽 하늘에 떠 있는 저녁
한강변을 뛰다
길 한가운데에 멈춰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작은 여치 한 마리 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 낯선 땅 위에 서 있는 낯선 가느다란 초록색 다리
스쳐 지나가는 이 바람은 또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또 어디로 가는가

나는 여치의 생각을 똑같이 따라하고
스쳐 지나가려던 바람도 잠시 머뭇거렸다

며칠 뒤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여치는 짓이겨져 있었다
나비가 날던 곳
아이들이 뛰놀던 곳
여치를 짓누른 무거운 것은 무엇인가

 

 

*시집/ 잠만 자는 방 있습니다/ 달아실

 

 

 

 

 

나는 밤마다 별들을 걱정한다 - 강건늘

 

 

언제부터인지

나를 부르지도 않고

소식조차 없는 나의 작은 별들

가만히 보니

아물아물 앓고 있다

바들바들 떨고 있다

 

시간을 돌리느라 시간을 계산하느라

밤새도록 태엽 감는 귀뚜라미는

시간이 너무 흘렀다고

별빛을 좋아하는 수리부엉이는

무언가를 견뎌내고 있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떨어지는 달빛에게 물어보니

서글퍼하는 표정뿐

 

우리의 한때를 기억하며 올려다본다

저어기 하늘가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

웅크리고 자기 방에서 나오는 않는 카시오페이아

병에 걸린 거냐고

슬픔에 잠겨 있는 거냐고

힘을 내라고

빛을 잃지 말라고

 

속엣말을 엿들었는지

버들잎이 쓰다듬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안부를 전해주겠다며 가을바람 소슬히 지나가는데

눈을 감으니

아스라이 멀어졌다 다가오는

영롱한 빛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