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성스러운 한 끼 - 박경은

마루안 2021. 12. 12. 19:39

 

 

 

며칠 전부터 올 한 해 읽으려고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쌓인 책을 정리했다. 매일 매일이 새날이고 기념일이라 여기면서 살지만 한 장 남은 달력은 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대책 없이 책 욕심만 있어 사들이는 습관은 어쩔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옷이나 신발 등 꼭 필요한 물건 외에는 사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있는 것은 버리고 가능한 사지 않는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올해 못 읽은 책은 내년에도 못 읽기는 마찬가지다. 자꾸 읽고 싶은 신간이 쏟아지는데 밀쳐둔 묵은 책에 손이 가겠는가. 미니멀리즘 실천의 제 1의 덕목은 <언젠가는>을 믿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는 필요하겠지, 읽겠지, 입겠지, 쓰겠지를 과감하게 잘라내면 실천할 수 있다. 가능한 사지 않고 나중 도서관 이용해야지 했다가 사게 되는 책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고도 목차만 훑어 본 후 쌓아 둔 책이 늘어만 간다.

 

며칠 전에 쌓인 책을 과감하게 묶어서 헌책방에 갖다 줬다. 두어 번 들춰만 봤거나 몇 쪽만 읽고 작별한 책이 아깝긴 하다. 버리면서 슬쩍 빼둔 책이 <성스러운 한 끼>다. 서둘러 읽었다. 무지 흥미롭다. 읽을 책은 이렇게 언젠가 인연이 닿기 마련이고 감동도  있다.

 

저자는 경향신문 박경은 기자다. 모든 음식이 성스럽지만 종교 음식 만큼 더할까. 이 책은 불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 종교와 관련된 음식 이야기다. 음식 비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그 음식의 유래에 관한 인문학적 접근이라 해야겠다.

 

다쿠앙과 단무지가 템플스테이 발우공양에 왜 빠지지 않고 나오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에 무릎을 친다. 음식 버리는 것을 죄악시 여기는 수행자의 태도를 알 수 있었다. 또 야곱의 팥죽과 렌틸콩의 관계는 또 어떤가.

 

음식이 흔해지면서 성스러운 한 끼가 퇴색한 시대이지만 나는 매 끼니를 성스럽게 먹는다. 라면 하나를 먹어도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으면 성스러운 한 끼인 것이다. 누가 책을 마음의 양식이라 했는가. 이 책은 지적 허기를 달래줄 참 맛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