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보헤미안 랩소디 - 최서림

마루안 2021. 11. 20. 21:38

 

 

보헤미안 랩소디 - 최서림

 

 

개미동굴만한 지하방에 세 들어 산다.

가을빛이 피곤하고 우울해

지네처럼 숨어 지낸다.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흩날리는 노란 은행잎도

그의 시들어가는 감각을 깨우지 못한다.

안으로 걸어 잠근 마음 문을 두드리지 못한다.

세상이 저만치 따로 굴러간다.

흔들리지 않는 바위도 못되고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짱돌도 되지 못하고

밟히면 부스러지고 마는 부스럭돌이 되고 말았다.

담배냄새 짙게 밴 이불 속에서 모가지만 빼들고 있다.

깡그리 싸질러버리고 싶은 분노도 삭아져버렸다.

창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모비딕 아가리 같은 세상 속으로 삼켜지고 있다.

 

 

*시집/ 가벼워진다는 것/ 현대시학사

 

 

 

 

 

 

빗장 - 최서림

 

 

과일 하나도 유기농만 가려서 먹는 그들은

스펀지처럼 보드랍고 상냥하다.

도우미도 강아지도 순하디 순하다.

저 먼 아프리카 난민 아이를 위해서는

매달 만원씩 기부하는 선량한 그들은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지나다닐까봐,

울타리를 높게 쌓아 올리고

전자 빗장을 걸어버렸다.

아파트 단지를 빙 둘러서

쫓기듯 등교하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애비앙으로 가글을 하고 있다.

울타리 안에 있는 '교양 있는' 그들은

울타리 밖에 있는 '교양 없은' 저들이

그리마나 바퀴벌레보다 무섭다.

 

나 또한 울타리 안의 '그들'이 되려고

아등바등 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시인의 말

 

내가 걸어온 역사는 인화물질로 가득 찬

드럼통이 굴러 내리는 비탈길이다.

자갈과 바위가 깔린 울퉁불퉁한 길이다.

좌충우돌 부딪혀 먼지 자욱한 길이다.

뽀족한 바위에는 볼품없이 찌그러져서

전혀 엉뚱한 길로 튀기도 한다.

드럼통이 제 길 찾아 한가운데로 느릿느릿 굴러가게,

이름도 없는 시인들이 비탈길에다

말로 잡목도 심고 숲도 가꾸어본다.

가난한 시인들이 사랑하는 역사는

괴물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개똥지빠귀, 산 까치가 집을 짓는 숲이 있고

모래무지, 뚝지가 납작 엎드려

지느러미만 살랑거리는 강이 있다.

논밭으로, 공장으로 가는 사람들의 길이 있고

호박꽃, 수세미꽃 피는 마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