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라면의 재발견 - 김정현, 한종수

마루안 2021. 11. 9. 22:19

 

 

 

라면을 좋아한다. 짜장면 곱배기를 후딱 해치울 정도로 10대는 물론 식탐이 심했던 20대까지만 해도 라면 두 봉지를 후딱 해치웠다. 지금은 소식을 하는 탓에 한 봉지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물론 아무것도 넣지 않고 라면만 끓이면 한 봉지가 딱이다.

 

나는 라면을 먹을 때 첨가물이 많다. 양배추, 양파, 멸치, 미역 등 몇 가지와 두부도 조금 넣어야 하고 불린 표고버섯 하나 아니면 양송이 두어 개 썰어 넣고 거기에 달걀까지 넣으면 웬만한 중국집 짬뽕 양이다. 내가 오뚜기 스넥면을 즐겨 먹는 이유도 면이 조금 적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라면을 먹는다. 희한하게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라면이다. 많이 먹으면 해롭다고도 하나 라면은 내가 가장 자주 먹는 영혼 음식이다. 여러가지 부재료를 넣기에 영양 불균형도 없다.

 

예전의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저자가 일본인이지만 한국에 라면이 어떻게 전해졌는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한 책이다.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이 탄생하기까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과 오쿠이 키요즈미 일본 묘조식품 회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 <라면의 재발견>도 라면이 개발되어 한국까지 진출하는 라면 연대기다. 덕분에 한국인은 세계에서 라면을 제일 많이 먹는다.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가히 압도적이다. 

 

세계 최초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8월 25일 닛산식품(日清食品)에서 나왔다. 닛산식품의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는 일제의 지배를 받던 대만에서 태어났다. 닛산에서 라면이 나오자 일본의 여러 식품회사가 라면을 생산한다.

 

최초의 한국 라면은 1963년 9월 15일 나온 삼양라면이다. 일본에서 최초의 라면이 개발된 후 딱 5년 후다. 삼양라면 창업자인 전중윤 사장은 일본 닛산식품을 방문해 기술을 팔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전중윤 사장은 묘조식품 오쿠이 기요즈미 사장을 찾는다. 일본 라면업계에서 닛산보다는 후발 주자였지만 묘조식품(明星食品)은 닛산과 라이벌이었다. 전중윤 사장의 마음을 이해한 오쿠이 사장은 선뜻 라면 기술을 삼양에 전수한다.

 

기술제휴라고는 하지만 일본에서 기계를 들여와 만든 일종의 모조품이다. 삼양라면도 처음엔 환영 받지 못했다. 닭고기 스프에서 쇠고기 스프를 개발하고 쌀이 부족했던 당시 정부의 혼분식 장려 덕분에 삼양라면은 고속 성장을 한다.

 

세계 최초의 라면 개발자인 모모후쿠 회장과 전중윤 회장은 라면을 거의 매일 먹을 만큼 즐겨 먹었음에도 백살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살다 세상을 떠난다. 모모후쿠는 2007년 97세로, 전중윤 회장은 지난 2014년 9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현재 한국의 라면 시장은 농심이 선두로 60% 내외의 독보적 점유율이다. 초창기 압도적 선두였던 삼양은 현재 오뚜기에도 뒤져 3위로 처졌다. 이 책은 농심보다 삼양라면 위주의 연대기다. 나는 오뚜기를 즐겨 먹지만 왜 1위가 농심이고 삼양이 3위인지를 소비자의 혓바닥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