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베두인의 물방울 - 우대식 시집

마루안 2021. 11. 6. 21:37

 

 

 

예전에 <시에 죽고, 시에 살다>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고 저자인 우대식 시인을 알았다. 한때는 기형도의 시를 달달 외울 정도로 밤을 새며 읽었다. 대부분 골백 번씩 읽었을 것이다.

 

여림 시인도 마찬가지다, 그의 유고 시집을 오랜 기간 옆에 두고 읽었다. 이연주와 신기섭 시인도 자주 들추는 시집이었다. 우대식은 12명의 요절 시인을 그만의 맛깔스런 문장으로 애도했다. 마음에 담고 있던 시인을 다시 소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우대식 시집을 찾아 읽었다. 생각보다 시집이 많지 않았다. 그가 낸 세 권의 시집 중 <단검>과 <설산 국경> 두 권을 읽었다. 시에 공감이 가면 시인의 약력이 궁금해지는 법, 그때 시인은 평택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이번에 나온 <베두인의 물방울>은 오랜 만에 나온 그의 네 번째 시집이다. 1999년에 등단했으나 시집이 네 권뿐인 것은 과작이다. 7년 만에 나온 이번 시집 제목에는 베두인이 나온다. 초기시부터 시종일관 바람과 함께 늙어가는 방랑자가 어른거렸다.

 

예전 영화에 빠져 살 때 영국인 환자(The English Patient)라는 영화가 있었다.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베두인이 나오는데 북아프리카 사막에 사는 그들은 유목민이다. 그러고 보니 우대식 시에는 어떤 결핍에서 오는 떠돎이 느껴진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묘비명에 대한 답신>이라는 시가 인상적어서 여러 번 읽었다. 생각이 너덜너덜해진 인간으로 괜히 눈물이 난다는 문구에서 시인의 맑은 심성이 보인다. 그가 표현하는 죽음은 어둡기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투명하고 맑다.

 

 

*어떤 고독 같은 것으로 인해

설명할 수 없는 괴로움과 달콤함에 취해 살아왔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무언가 어긋났다는 내용의 편지를 쓸 수밖에 없다

 

*시/ 묘비명에 대한 답신/ 일부

 

 

그동안 나는 이전 우대식의 시집 세 권을 모두 읽었으나 깊이 있게 읽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었다. 이번 시집은 예외다. 모든 것이 그렇겠으나 이 시집을 몰입해서 읽고 나니 시인의 문학관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우대식은 첫 시집에 실린 자서에서 시는 그에게 음울한 낡은 집이며 동시에 숨은 神이라고 했다. 불도장 새기듯 시로 표출되는 문장이 그 시인의 정체성일 텐데 나는 그의 어둡고 우울한 문장이 참 좋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서로 마음이 닿는 것, 시인과 독자 관계 아닐까.

 

 

안빈낙도를 폐하며 - 우대식

사람에 의지하지 마라
이제 오십이 넘었으니
안빈의 도와 같은 것도 필요 없다
안(安)도 그러하지만 빈(貧)도 모두 하찮다
당연히 그러할 것이니
자연으로 돌아갈 필요는 더욱 없다
고물상과 폐차장이 널려 있으면 어떠한가
걸어서 물에 도달하면 좋겠지만
아스팔트를 뚫고 핀 들꽃 한 송이면
또 어떠한가
내 몸은
나도 잘 모르는 문명의 회로이다
한 손에는 파리채
한 손에는 담배를 꼬나물고
날것들이나 물리치면서 시를 생각하는 일
하루에 두 줄 정도 쓰는 일
사람에 의지하지 마라
눈곱 낀 눈으로
먼 태풍을 응시하다가
생각이 부산해질 때
발다닥에 무늬를 새겨 넣을 뿐
그 족적(足跡)의 힘으로 천 리도 만 리도 갈 뿐